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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 블랙 레이블

이바라 흑 블랙 레이블 (Ibara Kuro Black Label 2006 02 06 Master Ver) · 2006 ·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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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려운 게임을 다시 손본다는 것

탄막 슈팅에는 블랙 레이블이라는 관례가 있습니다. 이미 내놓은 게임의 밸런스와 점수 체계를 다시 손봐 별도 버전으로 내는 것입니다. 보통은 원판을 파고들던 사람들이 도달한 결론을 반영해, 점수를 벌기 위한 행동과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 더 팽팽하게 맞물리도록 조정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초보를 위한 쉬운 버전이 아니라, 원판을 이미 충분히 한 사람들을 위한 다시 짠 판입니다.

이바라 블랙 레이블(Ibara Kuro Black Label)은 케이브가 자사 탄막 슈팅 이바라를 그렇게 다시 조정해 내놓은 종스크롤 슈팅입니다. 기본 구조는 원판과 같습니다. 화면 아래쪽 기체를 조종해 위로 나아가며 적을 처리하고, 화면을 뒤덮는 탄 사이로 길을 찾아 빠져나갑니다. 이 계열을 처음 보면 화면이 온통 탄으로 채워지는 그림에 먼저 놀라게 됩니다.

이바라 블랙 레이블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2006)

탄막 슈팅이 성립하는 이유

화면이 탄으로 가득 차는데 어떻게 살아남느냐고 물으면 답은 하나입니다. 자기 기체의 피격 판정이 아주 작기 때문입니다. 화면에 그려진 기체는 크지만 실제로 맞는 부분은 그 한가운데의 점 몇 개 크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기에 통과가 불가능해 보이는 탄 사이에도 실제로는 지나갈 길이 있습니다. 탄막 슈팅은 이 원리 하나 위에 세워진 장르입니다.

그 위에 얹히는 것이 저속 이동입니다. 버튼을 눌러 기체 속도를 늦추면 탄 사이를 세밀하게 비집고 들어갈 수 있고, 많은 게임이 이때 판정 위치를 눈에 보이게 표시해 줍니다. 초보가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이 바로 이 저속 이동입니다. 위험한 구간에서 전속력으로 움직이면 아무리 판정이 작아도 탄에 스스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다음은 시선 처리입니다. 화면 전체를 보려고 하면 탄이 너무 많아 뇌가 처리하지 못합니다. 자기 기체 주변 한 뼘 정도의 좁은 범위만 집중해서 보고, 그 안에 들어오는 탄만 처리한다는 마음으로 하면 훨씬 오래 삽니다. 탄막 고수들이 화면 전체를 다 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로, 볼 것을 줄이는 훈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바라 블랙 레이블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2006)

점수와 목숨 사이의 줄다리기

블랙 레이블 조정의 핵심은 대개 점수 체계에 있습니다. 탄막 슈팅에서 점수를 크게 벌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적에게 가까이 붙어 잡아야 배율이 오르거나, 폭탄을 아껴야 보너스가 붙거나, 특정 조건을 유지해야 계수가 쌓이는 식입니다. 안전하게만 하면 클리어는 할 수 있어도 점수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장르를 오래 하는 사람들에게 한 판은 두 개의 게임입니다. 하나는 죽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최대한 위험한 선택을 계속 하면서도 죽지 않는 게임입니다. 블랙 레이블은 그 두 번째 게임이 더 짜릿하게 굴러가도록 손을 본 판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은 점수를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폭탄을 아끼지 말고 위험할 때마다 쓰고, 스테이지 하나를 온전히 넘기는 것만 목표로 삼으면 됩니다. 이 장르의 초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폭탄을 남기고 죽는 것입니다. 남긴 폭탄에는 아무 값도 없습니다.

케이브라는 회사

케이브는 1990년대 중반부터 탄막 슈팅을 전문으로 만들어 온 일본 회사입니다. 다른 회사들이 슈팅에서 손을 떼고 격투나 리듬 게임으로 옮겨 가던 시기에, 오히려 슈팅에 더 깊이 파고들어 장르 자체의 문법을 다시 썼습니다. 화면을 탄으로 가득 채우되 판정을 극단적으로 줄여 회피를 성립시키는 설계, 점수를 위해 위험을 자초하게 만드는 배율 체계, 스테이지마다 색과 음악으로 성격을 뚜렷이 나누는 연출이 모두 이 회사에서 다듬어졌습니다.

그 결과 케이브 슈팅은 대중적으로 넓게 팔리는 상품은 아니지만 마니아층이 아주 두터운 물건이 됐습니다. 오락실에서 한 대 앞에 사람이 계속 붙어 있고, 그 사람들이 몇 년씩 같은 게임의 점수를 갈아 나가는 식입니다. 이바라와 그 블랙 레이블도 그런 방식으로 소비된 작품입니다.

우리 오락실에서의 자리와 지금

2000년대 중반이면 우리나라 오락실은 이미 크게 줄어들던 시기입니다. 남은 곳들은 리듬 게임과 격투 게임을 중심으로 돌아갔고, 일본 탄막 슈팅 기판은 몇몇 매장에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 계열은 오락실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보다, 슈팅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는 매장을 찾아가 하는 게임에 가까웠습니다.

지금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해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진입 장벽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다만 마음의 준비는 필요합니다. 첫 판은 거의 확실히 짧게 끝나고, 두세 번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장르는 원래 그렇게 시작합니다. 그래도 몇 판만 참고 저속 이동과 좁은 시선 처리에 익숙해지면, 화면 가득한 탄 사이로 기체가 미끄러져 나가는 그 순간의 감각을 한 번은 맛보게 됩니다. 탄막 슈팅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것이 바로 그 감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