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러스 패미컴판
자이러스 (Gyruss USA) · 1988 · Ko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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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까지 남은 거리
게임을 시작하면 화면 위에 이상한 안내가 뜹니다. 지구까지 몇 단계 남았다는 표시입니다. 해왕성에서 출발해 천왕성, 토성, 목성을 지나 지구로 돌아가는 여정인데, 슈팅 게임에 이런 목적지를 붙인 것만으로도 한 판 한 판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행성 하나를 지날 때마다 숫자가 줄어들고,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게 곧 진도입니다.
여기에 곡이 하나 더 얹힙니다. 이 게임의 배경음악은 고전 클래식 곡을 전자음으로 편곡한 것인데,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슈팅에 장중한 오르간풍 선율이 깔리니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화면보다 소리를 먼저 기억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자이러스(Gyruss)는 화면 바깥쪽 둥근 궤도를 따라 좌우로 돌면서 화면 안쪽을 향해 쏘는 슈팅 게임입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보통 슈팅과 달리, 내 기체는 항상 원 위에 있고 방향키는 그 원을 시계 방향이나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데 씁니다. 총알은 언제나 원의 중심을 향해 날아갑니다.
적은 화면 가운데 저 멀리서 점처럼 나타나 점점 커지면서 이쪽으로 밀려옵니다. 처음에는 줄지어 돌다가, 어느 순간 대열을 풀고 나를 향해 곧장 달려듭니다. 화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원근 표현 덕에 진짜 우주 공간을 정면으로 뚫고 가는 것 같은 그림이 나옵니다.
한 행성 구간은 여러 판으로 나뉘고, 마지막에 그 행성의 관문을 지키는 큰 적을 상대합니다. 관문을 넘으면 다음 행성으로 워프하는 짧은 연출이 나오고, 지구까지 남은 거리가 줄어듭니다.
조작과 무기
기본 무기는 앞으로 나가는 탄 하나지만, 도중에 나타나는 특정 적 편대를 통째로 지우면 강화 아이템이 나옵니다. 이걸 먹으면 탄이 두 갈래로 늘어나 화면을 덮는 폭이 커집니다. 한 대 맞으면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므로, 강화를 유지한 채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점수를 가릅니다.
폭탄도 있습니다. 한 번 쓰면 화면 앞쪽 상당 범위를 쓸어 내는데, 개수가 적어서 아껴 두게 됩니다. 사방이 적으로 막혔을 때만 쓴다는 원칙을 정해 두면 좋습니다.
원형 조작은 처음에 헷갈립니다. 화면 아래쪽에 있을 때는 방향키 좌우가 평소대로 느껴지는데, 위쪽으로 올라가면 좌우가 반대로 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고, 대체로 방향키를 보는 게 아니라 몸이 도는 방향을 보는 식으로 감을 잡게 됩니다.
막히는 지점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적이 대열을 풀고 달려드는 때입니다. 편대로 돌 때는 예측이 쉬운데, 흩어지는 순간부터 각자 다른 각도로 파고들기 때문에 원 위를 계속 돌면서 피해야 합니다. 한자리에 서서 쏘려고 하면 반드시 맞습니다.
두 번째로 조심할 것은 화면 중심에서 나오는 탄입니다.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퍼지는 탄은 바깥으로 갈수록 간격이 벌어지므로, 오히려 바깥쪽 궤도에 붙어 있는 게 안전합니다. 반대로 촘촘한 탄이 오면 도는 속도를 올려 빈 곳을 찾아 빠져나가야 합니다.
행성 관문의 큰 적은 약점 부위가 정해져 있습니다. 아무 데나 쏘면 튕겨 나가므로, 처음 한 바퀴는 어느 각도에서 쏠 때 반응이 오는지 확인하는 데 씁니다. 각도를 찾으면 그 자리를 유지하며 계속 쏘고, 반격이 올 때만 옆으로 피했다가 돌아옵니다.
원형 슈팅이라는 계보
화면 중심으로 파고드는 형식의 슈팅은 그 시절에도 흔치 않았습니다. 앞선 작품들이 만든 틀 위에서 이 게임은 원형 이동이라는 축을 얹어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위아래로 피하는 슈팅과 몸에 쌓이는 기술이 달라서, 다른 슈팅을 잘한다고 이 게임이 바로 잘되지는 않습니다.
패미컴판은 오락실판의 화면 밀도를 그대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원근감과 회전 조작이라는 핵심은 잘 살렸습니다. 소리 쪽도 기기 사정에 맞춰 다시 만들었는데, 오히려 단출한 음색이 이 곡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국내에서는 오락실에서 원판을 본 사람과 복사팩으로 이 패미컴판을 접한 사람이 반반쯤 됩니다. 이름을 몰라도 동그랗게 도는 우주 게임이라고 하면 대개 알아듣고, 배경음악을 흥얼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잡아도 규칙은 몇 초면 이해되고, 익숙해지는 데만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