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이스 HQ
체이스 H.Q. (Chase H Q World) · 1988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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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선이 없는 레이싱
레이싱 게임인데 골인 지점이 없습니다. 대신 무전이 들어옵니다. 어떤 차가 어느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으니 잡으라는 지시가 화면에 뜨고, 제한 시간 안에 그 차를 따라잡아야 합니다. 따라잡는 것으로 끝도 아닙니다. 차체를 들이받아 상대 차의 내구도를 깎아 완전히 멈춰 세워야 임무가 끝납니다.
이 게임은 체이스 H.Q.(Chase H.Q.)입니다. 경찰 두 명이 탄 스포츠카를 몰고 도심과 고속도로를 달리며 범죄 차량을 추격하는 구성으로, 뒤쪽 시점에서 도로가 밀려오는 방식은 여느 레이싱과 같지만 목적이 완전히 다릅니다. 순위 경쟁이 아니라 검거가 목표라서, 다른 차를 피하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밀어내면서 달립니다.
터보 부스트
이 게임의 상징은 터보입니다. 판마다 정해진 횟수만큼 쓸 수 있고, 누르는 순간 차가 튀어 나가듯 가속하면서 화면 양옆이 흐릿하게 늘어납니다. 도주 차량과의 거리가 화면 위에 표시되는데, 이 거리가 좀처럼 줄지 않을 때 터보를 정확히 넣어 주는 게 핵심입니다.
다만 터보 중에는 조향이 무뎌집니다. 앞차와 부딪히거나 갓길 구조물에 걸리면 크게 튕겨 나가면서 시간을 통째로 날리기 때문에, 도로가 비는 순간을 골라 써야 했습니다. 직선 구간을 미리 보고 눌러 두는 사람과, 급한 마음에 커브 앞에서 눌렀다가 벽에 박는 사람이 갈렸습니다.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면 어느 쪽으로 갈지 순간적으로 정해야 합니다. 어느 길이 빠른지는 몇 번 해 봐야 알 수 있어서, 이 게임을 오래 한 사람은 코스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따라잡은 뒤가 진짜
도주 차량이 화면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두 번째 싸움이 시작됩니다. 화면 위쪽 게이지가 상대의 내구도인데, 옆이나 뒤에서 부딪힐 때마다 조금씩 깎입니다. 상대도 가만있지 않고 좌우로 흔들며 도망가고, 차선을 바꿔 다른 차 사이로 숨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게이지가 조금 남았을 때가 가장 애가 탔습니다. 남은 시간과 남은 내구도를 눈으로 재면서 마지막까지 밀어붙이다 보면 뒤에서 구경하던 사람들까지 몸을 기울였습니다. 성공하면 범인이 붙잡히는 장면이 나오고 다음 임무로 넘어갑니다.
무전과 연출
임무마다 도주 차량의 종류와 배경이 바뀝니다. 도심을 지나 해안 도로로, 다시 산길과 고속도로로 이어지고, 후반에는 상대 차가 더 빠르고 더 잘 도망갑니다.
이 게임의 인상을 만든 것 중 하나가 음성과 무전 연출입니다. 출동 지시가 떨어지고 조수석의 동료가 상황을 알려 주는 흐름이 반복되면서, 단순히 차를 모는 게 아니라 임무를 수행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작할 때 사이렌이 울리며 차가 출발하는 장면 역시 기억에 남는 대목입니다.
이후 이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은 후속작들이 나왔고, 추격을 소재로 삼은 레이싱 게임의 원형처럼 이야기되는 작품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