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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키

크로키 (Croquis Germany) · 1996 · Den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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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기판 목록을 훑다 보면 낯선 이름 사이에 국내 회사가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데니암도 그중 하나입니다. 유럽에 수출되고 일본 이름을 따로 달고 나갔던 국산 퍼즐 게임이 1996년에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 보면 꽤 의외로 다가옵니다.

크로키(Croquis)는 데니암이 1996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퍼즐 게임입니다. 가로줄과 세로줄 끝에 붙은 숫자를 단서로 삼아 어느 칸을 칠하고 어느 칸을 비울지 추리해 나가면, 마지막에 그림 한 장이 떠오르는 방식입니다. 일본에서는 로직 프로라는 이름으로, 국내와 유럽에서는 크로키라는 이름으로 나갔습니다.

크로키 퍼즐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6)

규칙은 숫자 읽기

한 줄 끝에 숫자가 몇 개 적혀 있습니다. 그 숫자는 그 줄에서 연속으로 칠해질 칸의 개수이고, 숫자가 여러 개면 그 순서대로 덩어리가 놓이며 덩어리 사이에는 최소 한 칸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이 규칙만 알면 나머지는 전부 추리입니다.

시작할 때는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합니다. 요령은 확실한 곳부터 찾는 것입니다. 줄 길이에 비해 숫자가 큰 줄, 예를 들어 열 칸짜리 줄에 여덟이 적혀 있다면 왼쪽 끝에서 밀어 넣든 오른쪽 끝에서 밀어 넣든 겹치는 가운데 여섯 칸은 반드시 칠해집니다. 이렇게 확정되는 칸을 먼저 채우고, 거기서 갈라지는 세로줄을 다시 읽는 식으로 판을 풀어 갑니다.

비어 있는 것이 확정된 칸을 표시해 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칠할 칸만 신경 쓰면 같은 줄을 몇 번씩 다시 읽게 되는데, 아니라고 확인한 칸을 눌러 두면 남은 경우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오락실판이라는 조건

이 장르는 원래 종이와 연필로 느긋하게 푸는 것입니다. 오락실에 올리려면 두 가지를 손봐야 합니다. 시간 제한이 붙어야 하고, 틀렸을 때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이 작품도 제한 시간 안에 판을 완성해야 하고, 잘못 칠하면 벌칙이 붙는 구조로 긴장을 만듭니다.

그래서 종이로 풀 때와는 손버릇이 달라집니다. 확실하지 않은데 감으로 눌러보는 습관이 여기서는 바로 손해로 돌아옵니다. 시간에 쫓기더라도 확정된 칸만 채워 나가는 것이 결국 가장 빠른 길입니다.

판이 커질수록 난이도가 확 뜁니다. 작은 판은 한두 줄만 읽어도 답이 보이지만, 판이 커지면 세로와 가로를 몇 번씩 오가며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겨우 한 칸이 확정됩니다. 이 지점에서 처음 하는 사람은 대부분 시간에 밀립니다.

데니암이라는 회사

데니암은 1990년대 국내 아케이드 업계에 있던 회사 중 하나입니다. 시작은 다른 이름이었고 중간에 데니암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으며, 이 퍼즐 게임이 회사 이름으로 거둔 첫 해외 성과로 이야기됩니다. 이후에도 퍼즐 계열 작품을 몇 편 더 내놓았고, 회사가 다른 곳에 흡수된 뒤에는 국내 리듬 게임 계보로 이어졌습니다.

1990년대 중반은 국내 오락실 기판 시장이 수입 일변도에서 조금씩 벗어나던 시기입니다. 대형 액션이나 대전 격투로 정면 승부를 걸기에는 자본과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퍼즐처럼 아이디어와 규칙으로 승부가 나는 장르가 현실적인 선택지였습니다. 이 작품의 성격도 그 사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락실에서의 자리

당시 오락실에서 퍼즐 게임은 격투 게임 옆에 한두 대씩 놓이는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대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붙잡거나, 시끄러운 것을 피해 조용히 앉아 있고 싶을 때 고르는 종류였습니다. 이 게임도 그런 위치에서 돌았습니다.

같은 시기 퍼즐 게임 대부분이 블록을 떨어뜨리거나 짝을 맞춰 터뜨리는 형태였던 것과 비교하면, 숫자를 읽어 그림을 복원한다는 발상은 확실히 결이 다릅니다. 반사신경이 아니라 순수한 추리만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한 번 감을 잡으면 나이와 손 속도에 상관없이 붙잡을 수 있다는 것도 이 게임의 장점입니다. 지금 해 봐도 그 부분은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