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인스팅트 (게임보이)
킬러 인스팅트 (Killer Instinct USA Europe) · 1995 · Nintendo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연속기로 이름을 떨친 격투 게임
1990년대 중반 대전 격투 게임 판에서 이 시리즈가 내세운 것은 연속기였습니다. 한 번 잡으면 상대를 계속 붙들어 두고 때리는 긴 연결, 그리고 그것을 끊어 내는 반격까지 규칙으로 만들어 넣었습니다. 화면 위에 연속 타격 횟수가 큼직하게 뜨고 굵은 목소리가 그 숫자를 읽어 주는 연출은, 당시 오락실에서 사람을 모으기에 충분한 장치였습니다.
그 게임이 흑백 화면의 휴대용 기기로 옮겨 왔습니다. 큰 화면과 큰 소리를 빼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이 이식판은 그 질문에 대한 답 같은 물건입니다.
무슨 게임인가
킬러 인스팅트(Killer Instinct)는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싸우는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캐릭터를 하나 고르고, 상대의 체력을 먼저 깎아 내면 이깁니다. 앞뒤로 움직이고, 웅크리고, 뛰고, 막고, 버튼을 눌러 치는 기본 구조는 이 장르 어느 게임과도 같습니다.
이 시리즈만의 것은 그 위에 얹힌 연결 규칙입니다. 정해진 시작 기술로 상대를 걸면 그다음 기술이 이어지고, 그 사슬을 끝내는 마무리 기술까지 붙습니다. 그래서 단발로 한 대 때리는 것과 제대로 걸어 넣는 것의 피해량 차이가 아주 큽니다. 한 번의 실수가 체력 절반으로 돌아오는 게임이라는 뜻입니다.
휴대기로 옮기면서 달라진 것
흑백 두 줄짜리 화면에 격투 게임을 넣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캐릭터를 크게 그리면 움직일 공간이 사라지고, 작게 그리면 누가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버튼도 두 개뿐이라 원작의 여러 공격 세기를 그대로 옮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휴대기 이식판은 대개 타협의 결과물이 됩니다. 캐릭터 수가 줄고, 기술이 간추려지고, 연출이 단순해집니다. 원작을 오락실에서 실컷 해 본 사람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원작을 모르고 이 판부터 잡은 사람에게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격투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잡는 사람에게
격투 게임이 처음이라면 기술표를 외우려 들기 전에 두 가지만 익히면 됩니다. 하나는 막는 것입니다. 상대 쪽 반대 방향을 누르고 있으면 서서 오는 공격을 막고, 웅크린 채 뒤를 누르면 아래로 오는 공격을 막습니다. 이것만 알아도 일방적으로 맞는 일이 크게 줄어듭니다.
다른 하나는 거리입니다. 격투 게임의 절반은 어느 거리에 서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붙어 있으면 잡기와 빠른 공격이 오가고, 떨어져 있으면 발차기와 날아오는 기술이 오갑니다. 자기가 고른 캐릭터가 어느 거리에서 강한지 알고 그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초보와 중수를 가릅니다.
연속기는 그다음입니다. 이 시리즈는 연결이 핵심이라 욕심이 나겠지만, 걸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음 기술을 계속 눌러 봐야 빈틈만 커집니다. 확실히 한 대 맞혔을 때 이어 가는 연습부터 하는 편이 빠릅니다.
혼자 할 때와 둘이 할 때
혼자 하면 기계가 조종하는 상대와 차례로 붙는 방식입니다. 뒤로 갈수록 상대가 빨라지고 빈틈을 잘 파고들어, 어느 지점부터는 같은 수가 통하지 않습니다. 기계 상대는 사람과 달리 패턴이 있어서, 어떤 행동에 무엇으로 반응하는지 몇 번 붙어 보면 길이 보입니다.
대전 격투 게임이 제일 살아나는 것은 역시 사람끼리 붙을 때입니다. 기계는 같은 수에 계속 걸리지만 사람은 두 번째부터 대비합니다. 그래서 같은 기술을 언제 쓰느냐, 상대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읽느냐가 승부를 가릅니다. 이 심리 싸움이야말로 이 장르가 30년 넘게 살아남은 이유입니다.
그 시절의 격투 게임 이식
1990년대 중반은 오락실 격투 게임이 가정용과 휴대용으로 우르르 옮겨 가던 시기입니다. 성능 차이가 뻔한데도 이식이 계속된 것은, 그만큼 격투 게임의 인기가 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줄 알면서도 집에서 그 캐릭터를 만질 수 있다는 이유로 샀습니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오락실에서 줄 서서 하던 게임을 휴대기로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야깃거리가 됐습니다. 지금 다시 켜 보면 화면도 조작도 원작에 한참 못 미치지만, 당시 기술로 어디까지 밀어붙였는지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시절 휴대기 이식판들은 결과물보다 시도 자체가 기록으로 남은 쪽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