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패닉
헤드 패닉 (Head Panic Ver 0117 17012000 Story Line Game Instructions in English) · 2000 · ESD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무기가 자기 머리입니다. 버튼을 누르면 캐릭터가 목 위의 머리를 뽑아 앞으로 던지고, 머리가 굴러가며 부딪힌 적을 쓰러뜨립니다. 던진 동안 캐릭터는 목만 남은 채로 뛰어다닙니다. 이 황당한 설정 하나 때문에, 처음 화면을 본 사람은 대개 웃고 그다음 판까지 하게 됩니다.
헤드 패닉(Head Panic)은 한 화면 안에 놓인 스테이지에서 적을 모두 처치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단면 액션 게임입니다. 폴리와 샐리라는 두 캐릭터가 세계 곳곳을 돌며 괴물을 잡는다는 설정으로, 발판을 오르내리며 적을 유인하고 던진 머리로 쓸어 담는 것이 한 판의 전부입니다. 보글보글로 대표되는 한 화면 액션 계열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되, 무기가 굴러가는 물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손맛이 나옵니다.
던지고 줍고 다시 던지기
기본 흐름은 단순합니다. 적이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던지고, 머리가 굴러가며 적을 맞히고, 멈춘 머리를 다시 주워 씁니다. 문제는 던진 뒤의 공백입니다. 머리가 나가 있는 동안에는 공격 수단이 없으므로, 이 시간에 적에게 닿으면 그대로 당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실력은 얼마나 정확히 던지느냐보다 던진 뒤 어디로 피할지를 미리 정해 두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머리는 직선으로만 날아가지 않습니다. 던지는 각도와 발판의 배치에 따라 튀고 굴러다니면서, 잘 맞으면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정리합니다. 좁고 발판이 촘촘한 판에서는 이 특성이 크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아래층으로 굴려 보내는 것만으로 판이 정리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뻥 뚫린 판에서는 굴러가는 궤적이 짧아 손해를 봅니다.
적을 쓰러뜨리면 아이템과 함께 굴러다니는 공이 남습니다. 이 공은 지나가는 경로에 있는 적을 연달아 쓸어 버리므로, 여러 마리가 몰려 있을 때 일부러 아껴 두었다가 터뜨리면 판을 크게 단축할 수 있습니다. 진행하다 보면 요요 형태의 더 나은 기본 무기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손에 들고 던졌다 회수하는 감각이라 머리를 던질 때보다 공백이 훨씬 짧아지고, 그만큼 안정적으로 판을 돌 수 있습니다.
막히는 지점과 요령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죽는 이유는 던져 놓고 그 자리에 서서 결과를 지켜보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에서 서 있는 시간은 그대로 위험 시간입니다. 던진 즉시 반대쪽으로 이동을 시작해서, 머리가 굴러 돌아오는 지점으로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습관을 들이면 생존율이 크게 올라갑니다.
두 번째는 남은 한 마리를 급하게 쫓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한 화면 액션이 그렇듯 이 게임도 시간이 지나면 판을 재촉하는 압박이 들어오는데, 그렇다고 마지막 한 마리를 좁은 구석까지 따라 들어가면 도망칠 공간이 없어집니다. 넓은 자리에서 기다리며 적이 다가오게 만든 다음 던지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2인 동시 플레이일 때는 요령이 또 달라집니다. 두 사람이 같은 층에서 같은 방향으로 던지면 서로 무기 회수가 꼬입니다. 위아래 층을 나눠 맡고, 한 명이 던지는 동안 다른 한 명이 앞을 막아 주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면 판이 훨씬 빨리 닫힙니다.
2000년 무렵의 한국 기판 회사
이 게임을 만든 ESD는 1998년에 세워져 몇 해 동안 여러 아케이드 기판을 내놓은 한국 회사입니다. 여러 게임을 묶은 모음집 형태의 기판이나 소품 위주의 게임을 주로 냈고, 헤드 패닉은 그중에서도 자기 색이 가장 뚜렷한 작품에 속합니다. 모토로라 68000 계열 프로세서에 사운드용 Z80을 얹은 당시의 표준적인 구성 위에서, 큼직하고 알록달록한 그림과 코믹한 연출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에는 이런 회사가 여럿 있었습니다. 큰 자본 없이 검증된 장르를 골라, 캐릭터와 아이디어 한두 개로 차별화해 기판을 내던 시절입니다. 헤드 패닉이 고른 아이디어가 바로 머리 던지기였고, 결과적으로 그 시절 국산 기판 중에서 가장 기억하기 쉬운 게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락실에서의 자리
2000년의 오락실은 대전 격투와 리듬 게임, 그리고 대형 체감형 기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기자기한 한 화면 액션은 주로 문방구 앞이나 동네 오락실의 구형 캐비닛에 걸렸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규칙을 설명할 필요가 없고, 옆 사람이 하는 것만 봐도 뭘 하는 게임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게임의 강점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잡아 보면 조작이 가볍고 한 판이 짧아 부담이 없습니다. 머리를 던져 놓고 목만 남은 채 도망 다니다가 굴러온 머리를 되찾는 그 우스꽝스러운 리듬이, 요즘 게임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감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