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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터틀 쉽 (Turtle Ship North America) · 1988 · Phi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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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거북선이 미래형 전투정으로 개조되어 하늘을 납니다. 설명을 들으면 농담 같지만 실제로 그런 게임입니다. 1988년, 국산 아케이드 기판이 아직 손에 꼽던 시절에 우리 역사 속 물건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슈팅 게임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 게임을 기억할 이유입니다.

터틀 쉽(Turtle Ship)은 거북선 모양의 기체를 조종해 밀려오는 적을 쏴 떨어뜨리는 슈팅 게임입니다. 스테이지에 따라 화면이 옆으로 흐르기도 하고 위로 흐르기도 해서, 한 게임 안에서 가로 스크롤과 세로 스크롤을 모두 겪게 됩니다. 적을 부수면 아이템이 떨어지고, 이걸 먹어 미사일이나 강한 공격으로 화력을 올려 가는 구조입니다. 필코라는 국내 업체가 만들었고, 해외에도 이름을 바꿔 유통되었습니다.

거북선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8)

무엇과 싸우는가

적 구성이 특이합니다. 전투기와 포대 같은 흔한 상대뿐 아니라, 거미와 박쥐, 물고기와 해마 같은 것들이 나와서 덤빕니다. 바다 위를 날다가 물속 생물과 싸우고 다시 기계와 싸우는 식이라, 세계관을 따지자면 앞뒤가 잘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뒤죽박죽인 점이 이 게임의 인상을 만듭니다.

적이 떨어뜨리는 아이템은 종류가 여럿입니다. 화면 전체를 정리하는 강한 공격, 유도 성능이 있는 미사일, 그리고 화면 흐름을 느리게 만드는 것까지 있습니다. 특히 속도를 늦추는 아이템은 이 시기 슈팅에서 흔치 않은 물건인데, 탄이 몰려 도저히 답이 없을 때 숨통을 틔워 줍니다.

기본 사격은 아이템을 먹지 못하면 상당히 약합니다. 그래서 초반에 아이템을 놓치면 그대로 화력 부족에 몰려 진행이 막힙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은 대개 쏠까 피할까가 아니라, 저 아이템을 주우러 갈까 말까입니다.

거북선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8)

처음 잡으면 막히는 곳

난이도가 친절한 게임은 아닙니다. 적이 나오는 자리와 탄이 날아오는 각도가 미리 정해져 있는데, 그 배치가 초보자에게 여유를 주는 방향으로 잡혀 있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이유 없이 죽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몇 번 겪으면 외워집니다.

스크롤 방향이 바뀌는 지점이 또 하나의 벽입니다. 옆으로 가다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면 위험한 방향이 통째로 달라지고, 이전 구간의 감으로 움직이면 그대로 부딪힙니다. 방향이 바뀌는 순간 화면 가운데로 일단 자리를 옮겨 두는 습관을 들이면 사고가 크게 줄어듭니다.

피격 판정은 기체 그림 전체보다 조금 작게 잡혀 있는 편이라, 보기보다는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집니다. 다만 이걸 믿고 탄 사이로 파고드는 방식은 권하기 어렵습니다. 이 시절 게임답게 안전한 자리를 잡고 버티는 쪽이 훨씬 오래 갑니다.

국산 기판이라는 맥락

1988년의 한국 오락실은 일본 기판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정식으로 들어온 것도 있었고 복제 기판도 흔했는데, 어느 쪽이든 국내에서 처음부터 만든 게임은 아주 드물었습니다. 필코는 그 드문 축에 속하는 회사였고, 터틀 쉽 말고도 몇 편의 아케이드 게임을 남겼습니다.

이 게임은 캡콤 사이드 암즈 계열 기판 구조 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드웨어를 새로 설계할 여력이 없던 시절, 이미 검증된 기판 구성을 가져와 그 위에 자기 게임을 올리는 방식은 당시 여러 중소 업체가 쓰던 방법입니다. 그래서 화면 구성이나 스프라이트 처리에서 일본 게임의 냄새가 나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은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같은 자리에 놓인 일본 슈팅들과 화력이나 연출에서 차이가 났고, 100원의 선택지에서 밀렸습니다. 다만 거북선이 화면에 나온다는 것 하나로 기억에 남긴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도 국산 아케이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이 제목이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지금 보는 재미

객관적으로 잘 만든 슈팅이냐고 하면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조작 반응이나 난이도 조절에서 같은 해 일본 대표작들과 격차가 있습니다. 소리도 취향을 상당히 탑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남아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국산 기판이 아직 실험 단계이던 시절에 무엇을 만들려 했는지, 어떤 소재를 골랐는지가 화면에 그대로 있습니다. 거북선을 우주선처럼 개조해 하늘에 띄운다는 발상은 지금 봐도 국산 게임에서 흔치 않은 종류의 대담함입니다. 몇 판 돌려 보는 것만으로 그 시절의 공기가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