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틀 로드
더 배틀 로드 (The Battle Road) · 1984 · I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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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의 오락실은 아직 장르의 경계가 굳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자동차 게임이라고 하면 핸들을 돌려 도로를 따라가는 것이 전부일 것 같지만, 이 게임은 거기에 무기를 달았습니다. 화면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세로 스크롤이고, 플레이어가 모는 것은 그냥 경주차가 아니라 총을 단 전투 차량입니다. 앞을 막아서는 적 차량을 쏘아 치우면서 길을 뚫고 나아가는, 레이싱과 슈팅의 중간에 놓인 물건입니다.
더 배틀 로드(The Battle Road)는 아이렘이 만든 세로 스크롤 주행 전투 게임입니다. 도로 위를 자동차로 달리되, 목표는 빨리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것들을 넘기고 살아남는 쪽에 가깝습니다. 아이렘은 이 시기에 여러 실험적인 기판과 게임을 연달아 내놓고 있었고, 나중에 R-TYPE 으로 이름을 굳히기 전의 아이렘이 어떤 시도를 하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달리면서 싸운다는 것
이 게임의 핵심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나는 주행입니다. 도로에는 폭이 있고 가장자리가 있으며, 거기서 벗어나면 그것만으로도 손해를 봅니다. 다른 하나는 전투입니다. 앞에서 나타나는 적을 쏘거나 피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둘이 서로 다른 방향의 조작을 요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적을 정면으로 맞추려면 사선을 맞춰야 하는데, 그러자면 차를 좌우로 움직여야 하고, 그 움직임이 곧 주행 라인을 흐트러뜨립니다. 반대로 안전한 라인을 고수하면 적이 그대로 살아서 다가옵니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이 둘 사이의 저울질을 얼마나 빨리 하느냐에서 갈립니다.
처음 잡으면 왜 금방 죽는가
처음 이 게임을 하면 대개 속도에 당합니다. 세로 스크롤 슈팅에 익숙한 사람은 화면을 자기가 통제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차가 계속 앞으로 나가기 때문에 위험이 밑에서 올라오는 게 아니라 위에서 빠르게 내려옵니다. 반응할 시간이 짧습니다.
요령은 화면 아래쪽에 머무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위로 붙으면 앞이 안 보이고, 무엇이 나올지 모른 채 뛰어드는 꼴이 됩니다. 아래에 있으면 적이 화면에 들어온 뒤 대응할 여유가 반 박자 생깁니다. 또 하나는 쏘는 손을 쉬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시절 게임은 대부분 쏘지 않아서 손해 볼 일이 없으니, 앞을 계속 비워 두는 쪽이 낫습니다.
아이렘이라는 이름
아이렘은 1980년대 초반에 정체성을 찾아가던 회사였습니다. 지금 이 회사를 기억하는 사람 대부분은 슈팅으로 기억하지만, 그 이름을 굳힌 대표작이 나온 것은 이 게임보다 뒤의 일입니다. 그 전까지 아이렘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물건을 내놓으며 무엇이 먹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 탐색기의 산물입니다. 레이싱도 슈팅도 아닌 자리를 노렸고, 그래서 어느 쪽 팬에게도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은 감각을 줍니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축은 아니었지만, 한 회사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내기 전에 어떤 길을 밟았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들여다볼 값이 있습니다.
지금 해 보면
40년이 지난 지금 기준으로 보면 화면도 소리도 단출합니다. 그러나 이 시절 게임이 가진 특유의 단단함은 그대로입니다. 규칙이 몇 개 되지 않고, 그 몇 개가 서로 부딪치며 만드는 긴장이 게임의 전부입니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까지 즐길 수 있게 되어 있어 번갈아 가며 누가 더 멀리 가는지를 겨루는 방식이 잘 어울립니다. 한 판이 짧게 끝나기 때문에 실수한 이유를 바로 짚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무작정 빠르게만 느껴지던 흐름에서 규칙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가 이 게임이 재미있어지는 지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