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즈 레어
드래곤즈 레어 (Dragon S Lair Japan) · 1990 · Elite Sys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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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를 그대로 게임으로 만들려던 시절
1983년 오락실에 처음 등장한 원작은 화면 자체가 사건이었습니다. 도트로 찍은 그림이 아니라 극장에서 볼 법한 애니메이션이 그대로 움직였고, 사람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남이 하는 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습니다. 대신 정해진 순간에 정해진 방향으로 레버를 꺾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는, 동전을 무섭게 먹는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드래곤즈 레어(Dragon's Lair)는 기사 더크가 용에게 붙잡힌 대프니 공주를 구하러 성으로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휴대용 기기에서 그 애니메이션을 재현할 방법은 없었기 때문에, 이 판은 성 안을 직접 뛰고 베며 나아가는 횡스크롤 액션으로 아예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보는 게임에서 하는 게임으로
원작이 정해진 타이밍에 버튼을 누르는 게임이었다면, 이쪽은 발판을 밟고 뛰어넘고 칼을 휘두르는 평범한 액션 게임의 문법을 따릅니다. 더크는 검을 들고 성의 통로와 지하, 탑을 오르내리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역설적이지만 이 변화 덕분에 게임으로서는 오히려 더 게임다워졌습니다. 원작은 외운 대로 따라 하는 쪽에 가까웠는데, 이 판은 손으로 익힌 조작이 실제로 실력이 되어 쌓입니다.
인정사정없는 난이도
문제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발판 사이의 간격이 얄미울 정도로 아슬아슬하고, 뛰어내린 자리에 함정이 놓여 있는 구성이 반복됩니다. 처음 보는 구간에서 한 번쯤 죽어 보고 위치를 외우는 것이 사실상 전제로 깔려 있는 설계입니다.
체력과 목숨은 넉넉하지 않아서, 아는 구간은 최대한 안전하게 지나가고 체력을 남긴 채 새 구간에 들어가는 운영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달리면 초반 몇 화면을 넘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붙잡게 되는 이유
작은 화면 안에서도 더크의 동작에는 원작 특유의 과장된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칼을 휘두르는 자세나 함정에 걸렸을 때의 반응 같은 데서 만화적인 성격이 드러나고, 그 점이 딱딱한 난이도를 조금은 눅여 줍니다.
무엇보다 한 화면씩 외워 가며 조금씩 앞으로 밀고 나가는 감각이 있습니다. 어제는 못 넘던 구간을 오늘은 별생각 없이 지나가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어려운 게임을 계속 잡게 만드는 힘은 결국 거기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