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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로터스 (Rotors) · 1984 · ASC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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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X가 세상에 나온 지 겨우 한두 해 지난 시점입니다. 카트리지 하나에 들어가는 용량이 8킬로바이트 남짓이고, 화면에 띄울 수 있는 색도 손에 꼽습니다. 그런 조건에서 만들 수 있는 게임이란 결국 규칙 하나로 승부를 보는 물건이었고, 이 게임이 딱 그런 자리에 있습니다.

Rotors는 아스키가 1984년에 MSX용 카트리지로 내놓은 퍼즐 액션입니다. 화면에 흩어진 무늬들을 돌려가며 같은 것끼리 한 줄로 맞추면 사라지는 것이 기본 규칙입니다. 규칙 자체는 한 문장으로 끝나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빨리 판을 읽느냐를 겨루는 종류의 게임입니다.

로터스 퍼즐 게임 화면 1 - MSX (1984)

어떤 게임인가

조작은 키보드로도 조이스틱으로도 됩니다. 방향을 넣어 위치를 옮기고 버튼으로 돌리는, 이 시기 퍼즐 게임의 표준적인 구성입니다.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몇 번 눌러 보면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알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목표는 같은 무늬를 나란히 놓아 지우는 것입니다. 하나를 지우면 그 자리가 비고, 주변 배치가 따라 바뀌면서 다음 수가 생깁니다. 그러니까 눈앞의 한 줄만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운 뒤에 판이 어떻게 변할지를 한 수 앞서 보는 사람이 유리합니다.

두 사람이 겨루는 형태를 지원합니다. 이 시기 MSX 게임 중에는 혼자 점수만 쌓는 물건이 많았는데, 마주 앉아 누가 더 빨리 판을 정리하는지 겨룰 수 있다는 점이 이 게임이 오래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로터스 퍼즐 게임 화면 2 - MSX (1984)

처음 하면 걸리는 곳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초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눈에 보이는 짝부터 급하게 지우는 것입니다. 지우기는 쉽지만, 그렇게 정리하고 나면 남은 무늬들이 서로 멀리 흩어져 손댈 수가 없어집니다. 판이 굳어버리면 시간만 흘러갑니다.

요령은 판을 넓게 두는 방향으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한쪽 구석에 몰린 무늬부터 풀어내고, 가운데를 비워 두면 다음 수가 계속 생깁니다. 급하게 점수를 올리는 것보다 판을 굴러가게 유지하는 쪽이 결과적으로 더 오래 버팁니다.

시간에 쫓기는 구조라 손이 빨라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무작정 빠르게 누르는 것과 정확히 누르는 것은 다릅니다. 한 번 잘못 돌리면 원래대로 되돌리는 데 그만큼 시간이 더 들기 때문에, 움직이기 전에 목적지를 정하는 습관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아스키라는 회사

아스키는 원래 게임 회사라기보다 컴퓨터 잡지와 소프트웨어를 다루던 곳이었습니다. MSX라는 규격 자체를 만들고 퍼뜨린 주역이기도 해서, 초기 MSX 소프트웨어 목록에는 이 회사 이름이 유난히 자주 보입니다. 새로 나온 기계에 붙일 소프트웨어가 급하게 필요했던 시기라, 크지 않은 규모의 게임들이 꾸준히 나왔습니다.

이 작품도 그 흐름 위에 있습니다. 대작을 노린 물건이 아니라, 기계를 산 사람에게 바로 쥐여 줄 수 있는 가볍고 확실한 것에 가깝습니다. 나중에 다른 일본 8비트 기종으로도 옮겨졌습니다.

같은 시기 다른 퍼즐물과 견주면

1984년에는 아직 낙하물 퍼즐이라는 형식이 자리를 잡기 전입니다. 블록이 위에서 떨어져 쌓이고 줄이 차면 사라지는 그 익숙한 구조는 몇 해 뒤에야 널리 퍼졌습니다. 그 이전의 퍼즐 게임들은 이미 놓인 것을 어떻게 옮기고 바꾸느냐로 승부를 봤고, 이 작품도 그쪽 계열입니다.

그래서 손에 붙는 감각이 요즘 퍼즐과 다릅니다. 시간에 쫓겨 떨어지는 것을 받아내는 압박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판을 어떻게 정리할지 스스로 순서를 정하는 압박입니다. 잘 풀리면 연달아 지워지고, 잘못 건드리면 손댈 곳이 사라지는 식이라 한 판의 기복이 큽니다.

무늬를 알아보는 데 익숙해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화면에 쓸 수 있는 색이 적던 시절이라 무늬끼리 비슷해 보이는 경우가 있어서, 처음에는 눈이 헷갈립니다. 몇 판 하다 보면 형태로 구분하게 되고, 그때부터 속도가 붙습니다.

국내에서는

국내에서 MSX는 재믹스 같은 게임 전용기와 학습용 컴퓨터 두 갈래로 보급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액션과 슈팅 쪽 카트리지가 인기를 끌었고, 이런 조용한 퍼즐물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습니다. 대여점에서 빌려 온 카트리지 더미 안에 섞여 있다가 우연히 한 번 꽂아 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이런 게임이 남긴 자리가 있습니다. 한 판이 짧고, 규칙 설명이 필요 없고, 옆 사람과 바로 겨룰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컴퓨터가 한 대뿐인 집에서 형제끼리 번갈아 잡기에 알맞았습니다. 지금 다시 해 봐도 몇 분이면 요령이 잡히고, 그 뒤로는 순전히 판을 읽는 눈싸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