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지레이서
릿지 레이서 (Ridge Racer REV rr2 Ver B World) · 1993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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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 전에 게임이 하나 더 있었다
이 게임의 통 앞에 앉아 동전을 넣으면, 코스가 뜨기 전에 화면에 낯익은 우주 침략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데이터를 읽어 들이는 동안 심심하지 말라고 옛날 슈팅 게임 한 판을 얹어 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는데, 그 짧은 판을 끝까지 깨면 본편에서 숨겨진 차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오락실에 돌았습니다.
읽어 들이는 시간을 없애는 대신 그 시간에 다른 게임을 하나 넣어 버린 발상이, 이 게임이 어떤 태도로 만들어졌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어떤 게임인가
릿지레이서(Ridge Racer)는 코너에서 차를 일부러 미끄러뜨려 도는 드리프트 주행을 축으로 삼은 레이싱 게임입니다. 코너 앞에서 잠깐 액셀을 떼거나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 차의 뒤를 흘린 다음, 곧바로 액셀을 다시 밟아 미끄러짐을 유지한 채 코너를 빠져나갑니다.
이 조작을 모르면 벽만 긁다가 시간이 끝나고, 알고 나면 코너마다 속도가 붙습니다. 배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다듬을 여지가 있다는 점이 이 게임을 오래 붙잡게 만듭니다.
하나의 코스, 세 개의 얼굴
코스는 하나의 지형을 바탕으로 하되 난이도에 따라 길이 갈립니다. 처음에는 짧고 완만한 구간만 돌지만, 위 난이도로 올라가면 터널과 고가가 열리고 코너의 각이 사나워집니다. 같은 풍경을 지나면서도 매번 다른 코스처럼 느껴지는 구성입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체크포인트를 통과해야 하고, 통과하면 시간이 더해집니다. 앞차를 추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자기 주행이 깔끔해야 시간이 남습니다.
폴리곤으로 만든 도로
당시 기준으로 이 게임의 화면은 놀라울 만큼 매끄러웠습니다. 도로 표면에 무늬가 입혀져 있고, 노을과 밤바다, 터널 조명이 지나가면서 속도감을 만들어 냅니다. 폴리곤으로 만든 3차원 공간을 이렇게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볼거리였습니다.
핸들과 페달, 실제 자동차 시트를 그대로 붙인 큼직한 통이 오락실 입구에 놓여 있곤 했습니다. 그 앞을 지나가면서 화면만 구경하다가 결국 앉게 되는 게임이었습니다.
남긴 것
이 게임은 이후 수많은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이 참고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실제 물리를 흉내 내기보다 조작의 쾌감을 우선한다는 태도, 음악과 코스 분위기를 하나로 묶는 연출은 이 시리즈가 확립한 것입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차의 종류도 적고 코스도 단출합니다. 그런데도 몇 바퀴만 돌면 손이 코너의 리듬을 기억해 냅니다. 군더더기가 없어서 오히려 오래 남은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