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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챔프

멀티 챔프 (Multi Champ Korea) · 1998 · E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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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켜면 비틀즈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헤이 주드나 오블라디 오블라다 같은 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린 채, 화면에서는 짧은 미니 게임이 하나씩 지나갑니다. 1998년 한국의 아케이드 기판에서 벌어진 일이고, 지금 생각하면 여러모로 그 시절다운 풍경입니다.

멀티 챔프(Multi Champ)는 여러 개의 짧은 게임을 모아 놓은 미니 게임 모음입니다. 한 종류를 오래 붙잡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판을 연달아 넘기면서 점수를 쌓는 구조입니다. 1998년 4월에 세워진 한국 아케이드 제작사 ESD가 그해 11월에 내놓은 첫 작품이고, 이후 개선판이 다시 나올 만큼 회사 입장에서는 시작점이 된 기판입니다.

멀티 챔프 기타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8)

짧게 끊어 가는 재미

미니 게임 모음의 장점은 진입 장벽이 없다는 것입니다. 격투 게임처럼 커맨드를 외울 필요도 없고, 슈팅처럼 패턴을 익힐 필요도 없습니다. 앉으면 바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화면이 알려 주고, 몇십 초 안에 결과가 납니다.

대신 실력이 붙는 방식도 다릅니다. 한 가지를 깊이 파는 게임이 아니라, 여러 종류를 골고루 무난하게 해내는 사람이 좋은 점수를 냅니다. 특정 미니 게임에서 유독 약하면 거기서 점수가 새고, 그 한 종류를 연습하는 것이 전체 점수를 올리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흔히 겪는 어려움은 전환입니다. 방금까지 반사신경으로 하던 것에서 갑자기 침착함이 필요한 것으로 넘어가면 손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판이 바뀌는 순간에 한 박자 쉬면서 이번에는 무엇을 요구하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면 훨씬 안정적입니다.

둘이 붙을 때가 진짜

이런 부류의 게임은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붙을 때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짧은 판이 연달아 나오니 승패가 빨리 갈리고, 한 판 지면 바로 다음 판에서 만회할 기회가 옵니다. 이 리듬이 옆자리 사람을 계속 붙잡아 둡니다.

무엇보다 실력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큽니다. 격투 게임에서는 실력 차이가 있으면 일방적인 판이 되어 금방 재미가 없어지지만, 미니 게임 모음은 종류마다 잘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누가 이길지 끝까지 모릅니다. 오락실에서 둘이 앉기에는 이만한 구조가 드뭅니다.

ESD라는 회사

ESD는 1998년에 설립된 한국의 아케이드 제작사입니다. 멀티 챔프가 이 회사의 첫 게임이었고, 이후 개선판과 다른 장르의 게임들을 몇 편 더 내놓았습니다. 대형 회사는 아니었지만 몇 년 사이에 여러 기판을 만들어 낸 부지런한 곳이었습니다.

기판 구성은 그 시절 중소 규모 아케이드 게임의 전형입니다. 68000 계열 주 프로세서에 사운드 전용 칩을 붙인 구조로, 새로울 것 없는 대신 안정적이고 개발이 수월한 조합입니다. 이런 검증된 구성을 쓰면 하드웨어 씨름에 시간을 덜 쓰고 게임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배경음악으로 비틀즈 곡들이 쓰인 것은 이 게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입니다. 저작권 관리가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던 시절 국내 아케이드 게임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 주는 부분이고, 이 때문에 게임 자체는 잊었어도 음악은 기억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1998년 한국 오락실의 자리

1998년 한국 오락실은 대전 격투가 여전히 강했고, 리듬 게임과 대형 체감 기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사이에서 미니 게임 모음은 큰 화면을 차지하는 간판이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대신 이런 게임에는 다른 자리가 있었습니다. 문방구 앞이나 동네 오락실의 작은 기계, 혹은 여러 게임이 함께 돌아가는 자리에서, 잠깐 몇백 원 넣고 즐기는 용도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래 붙잡아 두는 게임이 아니라 지나가다 한 판 하는 게임이었고, 그 목적에는 정확히 맞았습니다.

지금 다시 켜 보면 시간을 재는 사람이 되어 봅니다. 한 판이 정말 짧고, 그래서 계속 한 판만 더 하게 됩니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켤 수 있으니 옆 사람과 나란히 붙어 보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