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오브 플롯
메이즈 오브 플롯 (Maze of Flott Japan) · 1989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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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고 다니는 게임인데 코스가 없습니다. 대신 도시 전체가 미로처럼 짜여 있고, 그 미로를 돌면서 돈을 모아야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는 통행료를 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차는 거리만 달리는 게 아니라 건물 안으로도 들어갑니다. 레이싱이라기엔 이상하고 미로 게임이라기엔 차가 너무 잘 달리는, 어느 쪽으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 구성입니다.
메이즈 오브 플롯(Maze of Flott)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의 차량 액션입니다. 도시의 골목과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며 돈을 모으고, 앞을 막는 적 차량을 무기로 부수며, 줄어드는 연료를 관리합니다. 모은 돈은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는 통행료와 무기 보충에 쓰이므로, 돈을 얼마나 모았느냐가 곧 다음 구역의 준비 상태가 됩니다.
세 가지를 동시에 관리하기
이 게임을 처음 하면 대개 연료로 무너집니다. 미로를 헤매다 보면 어느새 게이지가 바닥나 있고, 그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돌아다니는 대신 지나온 길을 기억하고 아직 안 본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식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같은 골목을 두 번 도는 것이 이 게임에서 가장 큰 낭비입니다.
돈과 무기도 함께 관리해야 합니다. 적을 만날 때마다 무기를 쓰면 다음 구역에서 살 것이 부족해지고, 아끼기만 하면 부딪혀 손해를 봅니다. 길목을 막고 선 적만 처리하고 피할 수 있는 적은 돌아가는 것이 기본 방침입니다. 세 가지 자원이 서로 물려 있어서, 어느 하나만 챙기면 나머지가 무너지는 구조입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재미
이 게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차를 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거리에서 보이는 입구로 들어가면 실내 구조가 또 하나의 미로로 펼쳐지고, 그 안에 돈이 놓여 있습니다. 밖에서 아무리 돌아다녀도 통행료가 모자란다면 들어가지 않은 건물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실내는 통로가 좁아 방향 전환이 어렵고, 들어갔다가 길이 막혀 되돌아 나오는 데 연료를 쓰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느 건물에 들어갈지 고르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밖에서 통로가 여러 갈래로 보이는 큰 건물일수록 얻을 것도 많지만 빠져나오는 데 드는 비용도 큽니다. 이 판단이 곧 이 게임의 전략입니다.
미로를 도는 요령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라 시야가 좁습니다. 화면 밖에서 적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일이 잦으므로, 교차로에 진입할 때는 속도를 줄이고 좌우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속도를 유지한 채 코너에 뛰어들면 벽에 부딪히거나 적과 정면으로 마주치기 십상입니다.
길을 외우는 것이 결국 가장 큰 요령입니다. 구역마다 지형이 정해져 있으므로, 몇 번 죽으면서 어디에 돈이 있고 어디가 막다른 길인지를 익히면 같은 연료로 훨씬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지도를 그린다는 마음으로 한 방향씩 훑고, 익숙해지면 돈이 많은 자리만 골라 도는 식으로 경로를 다듬어 가면 됩니다.
장르를 섞는 시도
이 게임은 미로 안에서 물건을 모으며 쫓기는 오래된 형식과, 차량을 몰고 적을 부수는 액션을 한 화면에 겹쳐 놓았습니다. 여기에 통행료라는 경제 개념까지 붙였습니다. 이 시기 오락실에는 이렇게 여러 장르를 붙여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고, 그중 일부는 성공했지만 상당수는 낯설다는 이유로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그 경계에 있습니다. 규칙이 여러 겹이라 처음 앉은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오락실은 그 시간을 잘 기다려 주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반대로 규칙을 이해하고 나면 다른 어떤 게임과도 다른 감각을 주는데, 그 지점까지 가 본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의 기억
한국 오락실에서 이 기판은 널리 깔린 축이 아닙니다. 같은 시기 이 회사가 낸 다른 유명작들에 비하면 존재감이 옅었고, 화면만 보고는 무슨 게임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이름을 아는 사람보다 어딘가에서 한 번 봤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은 부류의 게임입니다.
지금 해 보면 오히려 그 어중간함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정해진 코스를 도는 레이싱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목적지를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이 구조가 낯설고 신선합니다. 연료가 줄어드는 걸 보면서 어느 길로 갈지 고민하는 몇 초가 이 게임이 남긴 가장 좋은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