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스피드
톱 스피드 (Top Speed World) · 1987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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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터 버튼 하나가 붙었습니다
1986년 아웃런이 오락실을 뒤집어 놓은 뒤, 여러 회사가 비슷한 게임을 내놓았습니다. 빨간 스포츠카, 뻥 뚫린 도로, 갈림길에서 고르는 코스까지 구성이 닮은 게임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타이토가 내놓은 이 게임도 그 계보 위에 있지만, 남들이 넣지 않은 버튼을 하나 더 달았습니다. 부스터입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속도계가 시속 400킬로미터를 넘어갑니다.
톱 스피드(Top Speed)는 뒤에서 차를 따라가는 시점의 레이싱 게임입니다. 제한 시간 안에 구간을 통과해야 하고, 체크포인트를 지날 때마다 시간이 조금씩 더해집니다. 다섯 개의 스테이지로 이루어져 있고, 일본에서는 풀 스로틀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부스터를 언제 쓰느냐가 전부입니다
부스터가 있으면 처음에는 계속 누르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속도가 올라가면 화면이 흐르는 속도도 같이 올라가서, 앞차가 차선을 바꾸는 것을 보고 대응할 시간이 사라집니다. 이 게임에서 사고는 대부분 부스터를 켠 채로 교통량이 많은 구간에 들어갔을 때 납니다. 한 번 부딪히면 속도가 바닥까지 떨어지고, 다시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대로 손해가 됩니다.
그래서 요령은 도로 상태를 미리 읽는 것입니다. 앞이 뻥 뚫린 직선 구간이 보이면 그때 켜서 시간을 벌고, 커브가 이어지거나 차가 몰려 있는 구간에서는 손을 뗍니다. 커브에서 부스터를 켜고 들어가면 바깥으로 밀려 나가면서 갓길에 걸리는데, 이것 하나로 체크포인트를 못 넘기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시간 관리 감각도 필요합니다. 남은 시간이 넉넉해 보여도 뒤 스테이지로 갈수록 구간이 길어지고 교통량이 늘어납니다. 초반 구간에서 부스터로 시간을 벌어 두는 편이, 뒤에서 급해져 무리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앞에서 여유를 만들어 두는 것이 이런 시간제 레이싱의 기본입니다.
커브를 도는 방법
이 시절 레이싱은 지금처럼 정교한 물리 계산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 운전 감각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헷갈립니다. 커브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안쪽 차선으로 붙어 두고, 커브 중에는 조작을 크게 하지 않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커브 한가운데서 방향을 급하게 꺾으면 차가 미끄러지면서 통제를 잃습니다.
추월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차 바로 뒤까지 붙었다가 옆으로 빼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부터 빈 차선을 정해서 그쪽으로 미리 옮겨 두어야 합니다. 앞차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는 경우가 있어서, 붙어 있는 상태에서는 피할 공간이 없습니다.
아웃런 이후의 타이토
타이토는 이 게임 이후 레이싱 쪽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습니다. 이 작품이 뒤이어 나올 타이토의 드라이빙 게임용 기판 계보로 이어지는 출발점 역할을 했고,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타이토가 내놓은 여러 운전 게임이 그 흐름 위에 놓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아웃런에 대한 대답이면서 동시에 자기 기술을 다지는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체감형 기기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시기 레이싱 게임은 핸들과 페달이 달린 큰 기계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좌석에 앉아 진동을 느끼는 형태도 있었습니다. 오락실 입장에서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값도 비싼 기계였지만, 눈에 잘 띄어 손님을 끄는 간판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국내 오락실에서 핸들 달린 운전 게임은 늘 특별한 자리였습니다. 대부분의 기계가 조이스틱과 버튼이었던 시절에, 진짜 핸들을 잡고 페달을 밟는다는 것 자체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요금도 다른 기계보다 비쌌고, 앉아서 하는 자리는 늘 순서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만 이 게임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시절 오락실의 운전 게임은 대개 아웃런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불렸고, 빨간 차가 나오는 비슷한 게임들이 그 아래 묶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브라우저에서 바로 켜 볼 수 있으니, 그때 뭉뚱그려 기억했던 화면 중 어느 것이 이 게임이었는지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부스터 버튼을 눌러 속도계가 400을 넘어가는 순간의 감각은 지금 해 봐도 확실히 남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