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진센
메이진센 (Meijinsen) · 1986 · S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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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에 놓인 장기판
동전을 넣고 조이스틱을 잡았는데 화면에 뜬 것이 쇼기판이라면 어떨까요. 1986년에 나온 이 기판이 정확히 그런 물건입니다. 폭발도 없고 점프도 없고, 화면 가득 아홉 줄 아홉 칸의 판과 말이 놓여 있습니다. 남는 시간에 한 판 두고 가라는 뜻으로 다방이나 오락실 구석에 놓이던 종류의 기판입니다.
이런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립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시절 일본 오락실 풍경을 알려 줍니다. 마작이나 쇼기 같은 실내 놀이를 그대로 옮긴 기판은 하나의 확실한 시장이었고, 대형 액션 기판과 같은 가게 안에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동전을 넣는 사람의 나이대가 달랐을 뿐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메이진센(Meijinsen)은 일본 장기, 곧 쇼기를 컴퓨터와 두거나 사람끼리 두는 대국 게임입니다. 조이스틱으로 판 위의 커서를 옮기고 버튼으로 말을 집었다 놓습니다. 규칙 자체는 쇼기 그대로라, 이 게임이 새로 만들어 낸 규칙은 없습니다.
쇼기가 우리 장기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잡은 말을 자기 말로 다시 판에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 규칙 때문에 국면이 좀처럼 단순해지지 않습니다. 말을 교환할수록 손에 쥔 패가 늘어나고, 불리해 보이던 쪽이 손에 든 말을 한꺼번에 쏟아부어 뒤집는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우리 장기의 감각으로 두면 이 부분에서 크게 당합니다.
컴퓨터를 상대한다는 것
1980년대 중반 기판이 감당할 수 있는 사고 깊이는 뻔합니다. 몇 수 앞을 보는 정도가 한계였고, 그래서 이런 게임의 컴퓨터 상대는 대체로 비슷한 약점을 공유합니다. 눈앞의 이득에는 민감하지만 멀리 놓인 그림에는 둔합니다.
그래서 사람 쪽의 요령도 정해집니다. 당장 말을 하나 더 먹는 수보다 진영을 두텁게 쌓는 수가 결과적으로 유리합니다. 컴퓨터는 흔히 미끼를 물고, 물고 난 뒤 자기 왕 주변이 비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눈앞의 말을 탐내다가는 손에 든 말을 쏟아붓는 반격에 순식간에 몰립니다.
제한 시간이 걸려 있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됩니다. 집에서 두는 것과 달리 오락실 기판은 시간이 흐르고 동전이 걸려 있어서, 길게 생각하다 시간에 쫓겨 엉뚱한 수를 두는 일이 흔합니다. 초반 몇 수는 외워 둔 형태로 빠르게 넘기고 중반에 시간을 쓰는 배분이 필요합니다.
만든 곳
이 기판은 SNK의 이름으로 나왔지만 실제 개발은 알파 전자, 곧 뒷날 ADK가 되는 회사가 맡았습니다. 이 두 회사의 관계는 이후 네오지오 시절까지 이어져, 월드 히어로즈나 사무라이 스피리츠 계열을 아는 사람이라면 낯익은 조합입니다. 격투와 액션으로 이름을 남긴 조합이 그 이전에는 이런 조용한 기판도 만들고 있었던 셈입니다.
기판 자체는 당시 기준으로 결코 싸구려가 아니었습니다. 16비트 주 프로세서에 사운드용 프로세서를 따로 둔 구성인데, 화면에 보이는 것은 판과 말뿐입니다. 그만한 성능을 대국 판단에 쓰려 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이 기판의 진짜 쓸모는 사람끼리 두는 쪽에 있었습니다. 판과 말을 따로 꺼내 놓을 필요 없이 화면 하나로 대국이 되고, 반칙 수는 애초에 놓이지 않으며, 시간도 기계가 재 줍니다. 종이 기보를 적을 일도 없습니다.
다만 화면 하나를 두 사람이 번갈아 보는 구조라, 마주 앉는 대신 나란히 앉아 두게 됩니다. 실제 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것과는 분위기가 꽤 다릅니다. 이런 사소한 차이 때문에 실내 놀이를 옮긴 기판은 늘 원본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고 곁다리로 남았습니다.
국내에서는
한국 오락실에서 이 기판을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쇼기는 국내에 뿌리가 없는 놀이였고, 장기를 둘 사람은 오락실이 아니라 동네 평상에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자리 잡은 보드 계열 기판은 오히려 뒷날의 뿌요뿌요나 테트리스 같은 낙하 퍼즐 쪽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국내 오락실 추억의 목록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만 쇼기를 배워 보려는 사람에게는 지금도 쓸모가 있습니다. 규칙만 알고 있다면 상대를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한 판을 둘 수 있고, 컴퓨터 쪽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아 초보가 이겨 볼 만합니다. 잡은 말을 다시 쓰는 감각을 몸에 익히는 데는 실제로 몇 판 두어 보는 것만 한 방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