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이의 비보
모아이의 비보 (Moai no Hibou) · 1986 · Cas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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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 회사가 만든 게임
카시오라는 이름은 손목시계와 전자계산기로 익숙합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이 회사는 MSX 컴퓨터를 직접 만들어 팔았고, 그 기계에 넣을 게임도 몇 편 내놓았습니다. 이 작품은 그중 하나입니다.
MSX는 여러 회사가 같은 규격으로 각자 기계를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 회사가 아닌 곳도 뛰어들 수 있었고, 카시오는 값을 낮춘 보급형 기종으로 문턱을 낮춘 쪽이었습니다. 자기 기계를 팔려면 돌릴 게임이 필요했으니 소프트웨어도 직접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정에서 나온 게임이라, 대단한 물량이 들어간 대작은 아니지만 규칙 하나를 붙들고 끝까지 밀어붙인 짜임새가 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모아이의 비보(Moai no Hibou)는 화면 아래쪽에서 시작해 위쪽 출구까지 올라가는 퍼즐 액션입니다. 화면에는 돌덩이가 층층이 쌓여 있고, 주인공은 망치를 들고 그 돌을 부수며 길을 냅니다.
핵심은 아무 돌이나 부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돌을 부수면 위에 얹혀 있던 것이 무너져 내리므로, 순서를 잘못 잡으면 올라갈 발판이 사라지거나 길이 막혀 버립니다. 한 번 무너진 지형은 되돌릴 수 없으니, 부수기 전에 이 돌을 없애면 무엇이 어떻게 될지 머릿속으로 그려 봐야 합니다.
여기에 제한 시간과 적이 얹힙니다. 화면을 돌아다니는 적에게 닿으면 죽고, 시간이 다 되어도 죽습니다. 그래서 느긋하게 생각만 할 수도 없습니다. 돌을 부수다 보면 안에서 아이템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걸 모아야 진행이 풀리는 구성입니다.
어디서 어려워지나
초반 스테이지는 부수는 감각을 익히라고 만든 수준입니다. 길이 뻔히 보이고, 아무렇게나 부숴도 어지간해서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열 판 남짓을 넘긴 뒤부터입니다. 여기부터는 순서를 정확히 지켜야만 출구에 닿을 수 있게 지형이 짜여 있어서, 한 수만 어긋나도 그 판은 다시 해야 합니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습관은 목표 지점부터 거꾸로 짚어 보는 것입니다. 출구 바로 아래에 어떤 발판이 필요한지 먼저 정하고, 그 발판을 남기려면 어느 돌을 건드리면 안 되는지를 따집니다. 아래에서부터 즉흥으로 부수며 올라가면 거의 반드시 막힙니다.
시간에 쫓겨 급해지는 것도 함정입니다. 서두르다 잘못 부수면 어차피 그 판은 끝난 것이므로, 차라리 처음 몇 초를 화면 전체를 훑어보는 데 쓰는 편이 낫습니다. 보석을 시간 안에 최대한 모으는 보너스 판도 중간에 끼어 있어서, 여기서 벌어 두면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같은 시기 다른 게임과 견주면
땅이나 돌을 파고 부수며 나아가는 게임은 그 시절에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부수는 행위가 곧 이동 수단이어서, 파고 다니는 것 자체가 재미였습니다.
이 게임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부수는 것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라는 데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액션 게임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순서를 짜는 머리이고, 손이 빨라도 순서를 틀리면 못 깹니다. 반사신경보다 앞을 내다보는 쪽에 점수를 주는 구조라, 액션을 기대하고 붙잡으면 갑갑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 작품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게임이 아닙니다. 일본 안에서만 유통된 MSX 카트리지였고,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시절 한국의 MSX 사용자들에게는 정식 유통 여부가 큰 의미가 없기도 했습니다. 복사된 테이프와 디스크가 학교와 문방구를 통해 돌았고, 제목도 모른 채 목록에서 골라 실행해 보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게임 중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옮겨 적히지 않은 것이 많았고, 이 작품처럼 이름 표기가 여러 갈래로 남은 게임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런 게임을 브라우저에서 바로 열어 볼 수 있으니, 그때 목록에서 지나쳤던 제목을 뒤늦게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