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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존

배틀존 (Battle Zone REV 2) · 1980 · At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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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안으로 들어간 최초의 감각

이 게임을 처음 본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림이 아니라 시점이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초록색 선 몇 가닥으로 그린 지평선과 피라미드, 그리고 멀리 솟은 화산뿐인데, 그 단순한 선들이 앞뒤로 움직이며 자기 위치가 바뀌는 순간 갑자기 그 황무지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색도 없고 질감도 없는데 공간감만은 확실했습니다.

원래 오락실 기계는 조종석을 흉내 낸 큰 통에 잠망경처럼 생긴 접안경이 달려 있었습니다. 거기에 얼굴을 대고 들여다보면 주위 오락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초록 지평선만 남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소박한 장치지만, 화면 밖 세계를 차단해 몰입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에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배틀존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0)

어떤 게임인가

배틀존(Battlezone)은 황무지에 놓인 전차를 일인칭 시점으로 몰면서 사방에서 나타나는 적을 격파하는 게임입니다. 좌우 두 개의 레버를 각각 앞뒤로 밀어 좌우 무한궤도를 따로 굴리는 방식이라, 둘을 함께 밀면 전진하고 한쪽만 밀거나 서로 반대로 밀면 제자리에서 회전합니다.

화면 위쪽에는 주위 상황을 보여 주는 원형 레이더가 있습니다. 적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는 이 레이더로 알고, 그쪽으로 몸을 돌린 다음 조준선 안에 들어왔을 때 발사 버튼을 누릅니다. 목표는 죽지 않고 최대한 오래 버티며 점수를 쌓는 것이고, 끝나는 지점 없이 계속 이어집니다.

배틀존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0)

적의 종류와 상대법

가장 자주 나오는 것은 같은 전차입니다. 이쪽이 조준하듯 상대도 이쪽을 조준하며 다가오기 때문에, 서로 총구를 겨눈 채 도는 눈치 싸움이 벌어집니다. 사이에 피라미드나 상자 같은 장애물을 끼워 두고 돌면서 각도를 잡는 것이 기본 요령입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초고속 전차는 훨씬 성가십니다. 조준하는 사이에 이미 옆으로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에, 상대가 지나갈 자리를 미리 겨누고 기다리는 편이 낫습니다. 미사일은 아예 이쪽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데, 이건 장애물 뒤로 숨어 흘려보내는 것이 안전합니다.

가끔 하늘에 나타나는 접시 모양 비행체는 공격해 오지 않지만 점수가 높습니다.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챙기고, 아니라면 무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판단을 잘못해서 접시를 쫓다가 등 뒤의 전차에 맞는 것이 초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입니다.

배틀존 슈팅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80)

벡터 화면이라는 기술

이 시절 대부분의 게임은 화면을 점의 격자로 그렸지만, 이 게임은 전자빔이 선을 직접 그어 그림을 만드는 벡터 방식을 썼습니다. 선이 아주 또렷하고 밝게 나오며, 무엇보다 도형을 회전시키고 크기를 바꾸는 계산이 자연스러워서 삼차원 공간을 표현하기에 적합했습니다.

대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선뿐입니다. 면을 칠할 수 없으니 물체가 속이 비어 보이고, 화면에 선이 많아지면 밝기가 떨어집니다. 이 제약 안에서 화산과 지평선, 몇 종류의 장애물만으로 설득력 있는 전장을 만들어 낸 것이 이 게임의 설계 솜씨입니다.

한동안 아타리는 벡터 화면으로 여러 대표작을 만들었지만, 이후 색과 그림 표현이 좋아진 격자 방식이 주류가 되면서 벡터 기계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래서 이 초록 선 화면은 특정 시기에만 존재했던 독특한 질감으로 남아 있습니다.

실전 감각과 뜻밖의 후일담

이 게임의 시점과 조작이 실제 전차 조종과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훈련용으로 개조된 형태가 만들어진 적이 있습니다. 오락실 게임이 그런 쪽으로 넘어간 사례 자체가 드물어서, 이 이야기는 게임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일화가 되었습니다.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만 봐도 이 작품은 오래 남았습니다. 이후 등장한 수많은 일인칭 게임이 쓰는 기본 요소, 즉 시야 안에 없는 적을 레이더로 파악하고 몸을 돌려 조준하는 흐름이 여기서 이미 완성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는 큰 조종석형 기계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실물을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이 초록색 선 그림은 이후 여러 매체에서 옛날 게임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반복해 쓰이면서, 직접 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낯익은 화면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