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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크로스

배틀 크로스 (Battle Cross) · 1982 · Omori Electric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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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크게 남지 않은 1982년의 슈팅

오락실 슈팅게임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크게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기판이 수없이 나옵니다. 배틀 크로스도 그중 한 편입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일으킨 열풍이 갤러그와 문 크레스타로 옮겨 가던 무렵, 일본의 작은 제작사들이 저마다 한두 편씩 슈팅을 만들어 시장에 던지던 시기의 산물입니다.

이 시절 게임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화면 구성은 한 장이고, 설명서도 튜토리얼도 없습니다. 동전을 넣고 레버를 잡으면 그것으로 설명이 끝납니다. 대신 그 단순함 안에 몇 초 만에 규칙을 알아채게 하고 몇 분 만에 사람을 붙잡아 두는 밀도가 있었습니다. 배틀 크로스도 그 문법 위에 서 있는 게임입니다.

배틀 크로스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2)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배틀 크로스(Battle Cross)는 기체를 조종해 몰려드는 적을 쏘아 떨어뜨리는 비행 슈팅입니다. 레버로 기체를 움직이고 버튼으로 탄을 쏘는,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조작만으로 돌아갑니다. 화면에 나오는 것은 내 기체와 적, 그리고 서로 오가는 탄이 전부입니다.

목숨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이 시기 슈팅은 대체로 한 번 맞으면 그대로 한 대가 날아가고, 남은 기체가 떨어지면 게임이 끝납니다. 방어막이나 회복 같은 장치는 없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반사신경보다 자리 선정에서 갈립니다. 어디에 서 있어야 적이 오는 길과 겹치지 않는지를 아는 사람이 오래 버팁니다.

두 명이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만, 대개 번갈아 가며 한 판씩 맡는 방식입니다. 옆에서 보고 있다가 앞사람이 죽으면 교대하는, 그 시절 오락실에서 가장 흔했던 형태입니다.

배틀 크로스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2)

처음 잡았을 때 붙잡을 것

초창기 슈팅은 요령이 몇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화면 아래쪽에 딱 붙어 있지 말고 적당히 중간 높이를 유지하는 편이 낫습니다. 끝에 붙으면 피할 방향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둘째, 적이 나오는 순서는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몇 판만 반복해 보면 어느 쪽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몸이 먼저 기억하게 됩니다. 셋째, 욕심내서 다 잡으려 하지 않는 편이 오래 삽니다. 굳이 잡지 않아도 되는 적을 쫓다가 자리를 잃는 것이 가장 흔한 죽음입니다.

점수도 봐 둘 만합니다. 이 시기 게임 대부분이 일정 점수에 이르면 기체를 하나 더 주었습니다. 첫 보너스 기체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한 판의 길이를 크게 바꿉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무리하지 않고 점수를 쌓아 두는 쪽이 결과적으로 더 멀리 갑니다.

오모리 일렉트릭이라는 이름

배틀 크로스를 만든 오모리 일렉트릭은 지금은 남은 자료조차 넉넉하지 않은 회사입니다. 1980년대 초 일본에는 이런 회사가 아주 많았습니다. 기판 몇 장을 설계해 게임을 만들고, 유통은 큰 회사에 맡기고, 몇 해 뒤 조용히 사라지는 식이었습니다. 남코나 코나미처럼 살아남아 이름을 지킨 쪽이 오히려 예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은 완성도만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당시에는 기판 하나가 곧 회사의 한 해였고, 개발 인원도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화면에 넣을 수 있는 그림과 소리의 양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 조건에서 굴러가는 슈팅을 하나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기록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1982년이면 한국에도 전자오락실이 빠르게 늘어나던 때입니다. 다만 정식으로 들여온 기판보다 복사 기판과 개조 기판이 훨씬 많았고, 간판에 적힌 이름과 실제로 돌아가는 게임이 다른 일도 흔했습니다. 배틀 크로스처럼 유명하지 않은 게임은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그저 비행기 게임 정도로 뭉뚱그려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동네 문방구 앞 오락기에 어떤 기판이 꽂혀 있느냐는 순전히 운이었습니다. 그날 처음 보는 게임이 걸려 있으면 규칙을 모르는 채로 동전을 넣고 배웠습니다. 이런 무명작을 다시 켜 보는 재미는 그 감각을 되살리는 데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던 시절의 방식대로, 몇 판 죽어 가며 규칙을 스스로 알아내는 과정 자체가 이 게임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