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개먼
백개먼 (Backgammon) · 1984 · S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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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상대해 주는 가장 오래된 보드게임
백개먼은 기원이 수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보드게임입니다. 서양에서는 체스와 함께 술집이나 카페에 놓여 있는 흔한 놀이지만, 한국에서는 윷놀이와 장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탓에 이름조차 낯선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게임이 1984년 소니의 MSX 소프트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초기 가정용 컴퓨터의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그 시절 가정용 컴퓨터는 오락기이기 이전에 '컴퓨터'였고, 컴퓨터가 사람을 상대로 두어 준다는 것 자체가 팔릴 만한 기능이었습니다. 체스, 오델로, 백개먼 같은 고전 보드게임이 초기 소프트 목록에 꼭 한 자리씩 들어 있었던 이유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백개먼(Backgammon)은 주사위를 굴려 자기 말 열다섯 개를 판 위에서 옮기고, 모두 자기 진영 안으로 들여보낸 다음 판 밖으로 빼내면 이기는 2인용 보드게임입니다. 이 MSX판은 그 규칙을 그대로 구현해 컴퓨터를 상대로 둘 수 있게 만든 소프트입니다.
판은 스물네 칸으로 나뉘어 있고, 두 사람의 말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주사위 두 개를 굴려 나온 눈만큼 말을 옮기는데, 눈 하나마다 말 하나를 움직여도 되고 같은 말을 두 번 옮겨도 됩니다. 같은 숫자가 나오면 네 번을 움직입니다.
규칙의 핵심은 '혼자 있는 말'입니다
백개먼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한 칸에 자기 말이 하나만 있으면 그 말은 상대에게 잡힙니다. 잡힌 말은 판 한가운데 바로 밀려나고, 그 말을 상대 진영 입구부터 다시 넣기 전까지는 다른 말을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한 칸에 자기 말이 둘 이상 있으면 그 칸은 상대가 아예 밟지 못합니다. 그래서 백개먼의 전략은 대체로 '내 말을 짝지어 안전하게 두면서 상대의 길목을 막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여섯 칸을 연달아 막아 상대 말이 아예 못 들어오게 가두는 것이 가장 강한 형태입니다.
처음 두는 사람은 주사위 눈이 나오는 대로 앞만 보고 달리다가 혼자 있는 말을 여기저기 남기고, 그것이 계속 잡히면서 무너집니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말을 둘씩 붙여 두는 습관만 들이면 승률이 눈에 띄게 올라갑니다.
운과 판단이 섞이는 방식
백개먼은 주사위를 쓰기 때문에 운의 비중이 큰 게임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한 판만 놓고 보면 주사위가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같은 눈이 나와도 옮길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여럿이고, 그중 무엇을 고르느냐에서 실력이 갈립니다. 이 점이 순수한 운 게임인 주사위 놀이와 백개먼을 가르는 지점입니다.
컴퓨터를 상대로 두면 이 구조가 더 잘 보입니다. 사람은 눈앞의 진격에 끌리지만 컴퓨터는 안전한 배치를 꾸준히 유지하는 쪽으로 두는 편입니다. 몇 판 지고 나면 왜 저렇게 두는지가 슬슬 이해되고, 그때부터 이 게임이 재미있어집니다.
한 판이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흐름을 알고 나면 십 분 안팎이면 끝나기 때문에, 규칙을 익히는 연습 상대로 삼기에 적당합니다.
소니와 MSX 초창기
MSX는 여러 회사가 같은 규격으로 컴퓨터를 만들어 팔던 방식이었고, 소니는 그중 가장 앞장선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하드웨어만 만든 것이 아니라 소프트도 직접 냈는데, 화려한 오락물보다는 이렇게 실용적이거나 교양에 가까운 물건이 초기 목록에 많았습니다.
이 백개먼도 그런 성격입니다. 화면은 소박하고 소리도 거의 없습니다. 판과 말을 알아볼 수 있게 그려 놓고 규칙대로 돌아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시절 기계 사양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몫을 했습니다.
지금 해 보면
한국의 오락실이나 문방구에서 이 게임을 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MSX 자체가 국내에서는 대우와 금성 같은 회사를 통해 학습용 컴퓨터로 팔렸고, 거기에 딸려 오는 소프트도 액션 게임 쪽에 쏠려 있었습니다. 백개먼은 규칙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팔리는데 국내에는 그 기반이 없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해 볼 만한 때이기도 합니다. 규칙 자체는 한 번만 이해하면 평생 쓸 수 있고, 컴퓨터가 상대해 주니 배우는 데 사람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되니, 몇 판 굴려 보면서 이 오래된 게임이 왜 아직도 남아 있는지 확인해 보기에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