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퀴즈 고고
데이트 퀴즈 고고 (Date Quiz Go Go Korea) · 1998 · Sem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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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문제가 나오던 오락실 기계
1990년대 오락실 기계는 대부분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 화면에 나오는 글자도 일본어나 영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글로 문제를 던지는 기계가 한두 대씩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회사가 직접 만든 퀴즈 게임들입니다. 화면에 익숙한 우리말 문제가 뜨고, 그 시절 유행하던 이야기와 연예인 이름이 보기로 나오는 순간의 반가움은 지금 생각해도 묘한 데가 있습니다.
데이트 퀴즈 고고(Date Quiz Go Go)는 세미콤이 1998년에 내놓은 퀴즈 게임입니다. 사지선다로 나오는 한국어 문제를 제한 시간 안에 골라 맞히고, 정답을 쌓아 가며 다음 상대와의 데이트로 넘어가는 구성입니다. 조작이라고 할 것도 거의 없어서, 레버로 답을 고르고 버튼으로 확정하면 끝입니다.
한 판의 흐름
한 문제마다 시간이 주어집니다. 화면 아래 시간 막대가 줄어드는 동안 답을 고르지 못하면 오답 처리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긴장은 문제 난이도보다 시간에서 옵니다. 아는 문제인데 보기를 읽다가 시간이 끝나 버리는 일이 자주 생기고, 그때의 억울함이 곧바로 동전을 하나 더 넣게 만듭니다.
일정 개수를 맞히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틀리면 기회를 잃습니다. 실수를 몇 번까지 허용하는지가 정해져 있어서, 초반에 쉬운 문제를 놓치면 뒤에서 압박이 심해집니다. 반대로 앞에서 깨끗하게 넘어가면 후반의 어려운 문제 앞에서 한두 번 틀려도 버틸 수 있습니다.
문제 사이사이에 짧은 장면이 들어가면서 데이트가 진행되는 모양새를 만듭니다. 이야기 자체가 대단히 깊지는 않지만, 문제만 계속 나오는 것보다 다음 화면이 궁금해져서 한 판을 더 붙잡게 됩니다.
문제의 성격
출제 범위는 넓습니다. 상식과 시사, 연예, 스포츠, 속담과 사자성어, 학교에서 배운 과목까지 두루 나옵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고, 각자 아는 분야에서 강했습니다. 친구들끼리 둘러서서 훈수를 두는 광경이 흔했고, 사실상 여러 명이 같이 푸는 게임이 되곤 했습니다.
이런 국산 퀴즈 게임의 문제는 그 시절 한국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와 가수, 그해의 사건이 그대로 문제로 나오기 때문에 지금 보면 시간이 멈춘 자료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모르는 문제가 꽤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정답을 맞혔을 때 나오는 짧은 반응도 이런 게임에서는 꽤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맞히면 곧바로 칭찬이 돌아오고 틀리면 그만큼 실망하는 연출이 붙어서, 문제 하나하나에 감정이 실립니다. 단순히 정답 개수를 세는 것과는 다른 몰입이 생깁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요령은 단순합니다. 모르는 문제에서 오래 붙잡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오답이니, 감으로라도 하나를 찍고 넘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확률상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 것보다 훨씬 유리합니다.
또 하나는 보기를 먼저 훑는 것입니다. 문제 전체를 다 읽고 나서 보기를 보면 시간이 모자랍니다. 문제의 핵심 단어와 보기를 함께 훑으면 아는 문제에서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고, 그 여유를 모르는 문제에 쓸 수 있습니다.
반복해서 하다 보면 문제가 겹치기 시작합니다. 문제 수가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판을 하면 봤던 문제가 다시 나옵니다. 그때부터는 실력보다 기억의 게임이 되고, 그래서 단골이 유난히 잘하던 기계이기도 했습니다.
세미콤과 국산 기판
세미콤은 1990년대 후반 국내에서 아케이드 기판을 만들던 회사입니다. 퍼즐과 액션, 퀴즈까지 여러 장르를 손댔고, 큰 자본 없이 만들었기 때문에 완성도가 고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한국어로 된 게임을 오락실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이용자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퀴즈 게임은 특히 국산이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장르였습니다. 문제와 언어가 곧 콘텐츠이기 때문에 수입 기판으로는 대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 국산 퀴즈 기판은 오락실뿐 아니라 동네 문방구 앞 기계로도 여럿 나갔고, 학교 끝나고 몰려든 아이들이 서로 답을 외치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 게임을 다시 하면 문제 자체보다 그 시절의 공기가 먼저 다가옵니다. 어떤 것이 유행이었고 사람들이 무엇을 당연하게 알고 있었는지가 문제 속에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으로서의 재미와는 별개로, 1990년대 후반 한국을 담은 기록처럼 읽히는 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