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스
벌거스 (Vulgus Japan) · 1984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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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콤이라는 이름이 처음 붙은 기판
지금은 격투와 액션으로 더 익숙한 회사지만, 그 회사가 오락실에 내놓은 첫 작품은 조용한 종스크롤 슈팅이었습니다. 뒤에 나올 어떤 대작의 그림자도 아직 보이지 않던 시절, 이 기판 하나로 회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잘 만들었다는 평가보다 여기서 시작했다는 사실로 먼저 기억됩니다.
벌거스(Vulgus)는 화면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종스크롤 슈팅입니다. 플레이어는 한 대의 전투기를 몰고 편대를 짜서 밀려오는 적기와 지상 표적을 상대합니다. 스테이지가 끝나면 다시 처음 구성으로 돌아가고, 돌 때마다 적의 밀도가 올라가는 구조라 결국 어디까지 버티며 점수를 쌓느냐로 승부가 납니다.
버튼 두 개로 나뉘는 공격
조작은 단출합니다. 레버로 기체를 움직이고 버튼으로 쏘는 것이 전부인데, 공격이 한 가지가 아닙니다. 앞으로 뻗는 사격과 성격이 다른 또 하나의 공격을 나눠 쓰게 되어 있어서, 눈앞의 적기와 발밑의 지상 표적을 어느 쪽 손가락으로 처리할지 정해야 합니다.
이 단순한 분업이 생각보다 오래갑니다. 두 공격을 번갈아 쓰다 보면 손이 바빠지고, 바빠진 손 때문에 회피가 늦어집니다. 요즘 슈팅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는 탄은 없지만, 적기가 그리는 궤적이 제법 날카로워서 방심하면 금방 한 대를 내줍니다.
점수판이 전부이던 시절
이 시기 오락실 게임에는 엔딩이라는 개념이 희미했습니다. 목표는 마지막 보스가 아니라 화면 위쪽에 찍히는 숫자였습니다. 동전 하나로 몇 분을 버텼는지, 어제 남의 이름 아래 있던 기록을 오늘 넘겼는지가 실력의 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즐기는 방법도 그 시절 방식이 잘 맞습니다. 끝을 보겠다고 마음먹기보다 자기 최고 기록을 조금씩 밀어 올리는 쪽입니다. 한 판이 짧게 끝나니 부담 없이 다시 시작하게 되고, 몇 번 반복하면 적이 나오는 순서가 손에 익습니다.
그다음으로 이어진 길
이 작품이 나온 해가 저물기 전에 같은 회사는 프로펠러 전투기가 나오는 종스크롤 슈팅을 하나 더 내놓습니다. 그쪽이 크게 성공하면서 회사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이후 오락실 슈팅의 한 계보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보면 첫 작품과 그 뒤 작품 사이의 거리가 놀라울 정도로 짧습니다.
그런 흐름을 알고 나서 다시 해보면 화면 곳곳이 다르게 보입니다. 적 편대가 들어오는 방식, 지상 표적을 배치하는 감각처럼 나중에 익숙해질 요소들이 이미 여기에 밑그림으로 놓여 있습니다. 회사의 출발점을 직접 만져보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