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퍼 트레일
베이퍼 트레일 (Vapor Trail Hyper Offence Formation World Revision 1) · 1989 · Data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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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위를 낮게 나는 전투기
세로 슈팅의 배경은 대개 우주이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새입니다. 이 게임은 다릅니다. 화면 아래로 흘러가는 것은 고층 건물이 늘어선 도시이고, 다리이고, 항구입니다. 기체도 우주선이 아니라 실제 전투기에 가까운 실루엣을 하고 있어서, 처음 몇 초는 슈팅이 아니라 비행 게임을 켠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다 첫 적 편대가 나오는 순간 분위기가 바뀝니다. 화면 곳곳에서 폭발이 터지고, 아래로 흘러가던 건물 위에서 포탄이 올라옵니다. 사실적인 배경 위에 과장된 화력을 얹어 놓은 대비가 이 게임의 첫인상을 만듭니다.
어떤 게임인가
베이퍼 트레일(Vapor Trail)은 화면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세로 슈팅입니다. 무장 세력에게 점령당한 시설을 되찾기 위해 출격하는 전투기 부대가 소재이고, 도시와 기지, 공장 같은 무대를 차례로 지나며 구간마다 큰 보스를 상대합니다. 조작은 이동과 발사, 그리고 급할 때 쓰는 특수 공격입니다.
시작할 때 기체를 고릅니다. 빠른 대신 화력이 약한 쪽, 느리지만 탄이 굵은 쪽처럼 성격이 갈려 있어서, 같은 구간이라도 어느 기체로 가느냐에 따라 대응이 달라집니다. 처음이라면 중간 성격의 기체가 무난하고, 익숙해진 뒤에 빠른 기체로 바꾸면 피하는 재미가 커집니다.
무기를 골라 키우는 방식
파워업은 색이 다른 아이템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색을 먹느냐에 따라 주무기의 성질이 통째로 바뀌고, 같은 색을 반복해서 먹으면 그 무기가 점점 강해집니다. 그래서 아이템이 나올 때마다 무작정 먹는 것이 아니라, 지금 쓰는 무기를 계속 키울지 다른 무기로 갈아탈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정석은 자기 손에 맞는 무기 하나를 정해 두고 그것만 계속 먹는 것입니다. 무기를 바꾸면 위력이 처음 단계로 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보스 직전에 다른 색을 잘못 먹고 화력이 반토막 난 채 싸우게 되는 일이 흔합니다. 화면 넓게 퍼지는 무기는 잡졸 정리에 좋고, 앞으로 모이는 무기는 보스전에서 확실히 빠릅니다.
특수 공격은 화면 상황을 한 번에 정리해 주는 수단입니다. 아깝다고 아끼다가 그대로 죽는 것이 가장 손해이므로, 탄이 겹쳐서 피할 길이 안 보이는 순간에는 망설이지 말고 쓰는 편이 낫습니다.
난이도가 튀는 지점
이 게임에서 어려워지는 순간은 대체로 지상 표적이 많은 구간입니다. 공중의 적만 보고 있으면 아래쪽 건물에 붙은 포대가 계속 탄을 올려 보내고, 그 탄이 하필 화면 아래쪽에 겹치면서 빠져나갈 자리가 사라집니다. 지상물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우선순위를 높게 두고 먼저 지워야 합니다.
죽으면 무기가 초기 상태로 돌아가는 것도 고비를 만듭니다. 후반 구간에서 한 번 죽으면 맨몸으로 탄막을 뚫어야 해서 그대로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화력을 지키는 것이 곧 실력이고, 위험해 보이는 구간에서는 점수를 조금 손해 보더라도 화면 아래쪽 구석에서 안전하게 통과하는 선택이 유효합니다.
만든 곳의 감각
데이터 이스트는 남들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게임을 만들던 회사였습니다. 이 게임에서도 그 성격이 보입니다. 정통 슈팅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배경을 현실의 도시로 잡고, 기체 선택과 무기 교체를 앞에 내세워 자기 색을 냈습니다. 화면 가득 터지는 폭발과 다소 과한 연출도 이 회사 게임에서 자주 보던 것입니다.
이후 같은 회사가 내놓은 세로 슈팅들이 이 게임의 뼈대를 이어받았습니다. 기체를 고르고, 무기 계통을 정해 키우고, 지상과 공중을 함께 상대하는 구성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화려해집니다. 그 계보의 출발점에 있는 작품이라 지금 해 봐도 구성이 낡았다는 느낌이 크지 않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이 회사의 기판은 국내 오락실에 꽤 들어와 있어서, 이름은 몰라도 화면은 본 적 있다는 사람이 많은 부류입니다. 세로 슈팅이 한 대씩은 놓여 있던 시절이고, 두 사람이 함께 붙어 동전을 나눠 넣던 게임이기도 합니다.
둘이 하면 체감 난이도가 확실히 내려갑니다. 화면 좌우를 나눠 맡으면 지상 표적을 훨씬 빨리 지울 수 있고, 한 명이 죽어도 다른 한 명이 화력을 유지한 채 구간을 넘길 수 있습니다. 혼자서 후반이 안 넘어간다면 사람을 하나 더 붙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공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