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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스톰

블러드 스톰 (Blood Storm v2 22) · 1994 · Str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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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마다 버튼이 하나씩

대전격투의 버튼 배치는 대개 약공격과 강공격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이 게임은 그 상식을 버립니다. 버튼 하나가 왼팔, 하나가 오른팔, 하나가 왼다리, 하나가 오른다리에 각각 대응합니다. 누른 버튼에 해당하는 팔다리가 그대로 움직이는 방식이라, 처음 잡으면 무엇을 눌러야 무슨 공격이 나오는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여기에 상대를 끝장내는 전용 버튼이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블러드 스톰(Blood Storm)은 한 명씩 골라 맞붙는 대전격투입니다. 황폐해진 세계를 배경으로 성격이 제각각인 투사들이 나오고, 붙으면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피가 튑니다. 승부가 갈리는 순간에 특정 조작을 넣으면 상대의 목을 날려 버리는 마무리가 들어가는데, 이 게임이 오락실에서 눈에 띄었던 이유의 절반은 그 장면이었습니다.

블러드 스톰 대전격투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4)

타임 킬러스에서 이어진 것

이 게임은 앞서 나온 같은 제작진의 대전격투에서 곧장 이어집니다. 팔다리마다 버튼을 배당하는 발상, 팔이 잘려도 계속 싸우는 연출, 목을 날리는 마무리까지 그 작품에서 처음 나왔고 이 후속작이 그것을 다듬어 받았습니다. 캐릭터 수가 늘고, 배경과 연출이 화려해졌으며, 조작의 반응도 손봐졌습니다.

다만 뼈대에서 오는 한계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팔다리를 직접 조작한다는 발상은 신선하지만, 실제로 싸울 때는 어느 버튼이 어느 거리에서 유효한지를 외우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같은 시기 일본 회사들의 대전격투가 다듬어 놓은 견제와 반격의 리듬에 견주면 공방이 성기고, 한 번 걸린 뒤에 이어지는 흐름도 단순한 편입니다.

그래도 이 게임만의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팔이 잘린 상태로도 싸움이 이어진다는 설정은 실제로 전투에 영향을 줍니다. 한쪽 팔을 잃으면 그쪽 버튼으로 나가던 공격이 사라지므로, 불리해진 쪽은 남은 수단으로만 싸워야 합니다. 승부가 기울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이 구조가 이 게임의 긴장감을 만듭니다.

블러드 스톰 대전격투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4)

처음 잡는 사람을 위한 요령

먼저 네 개의 공격 버튼 중 자기 캐릭터에게 잘 맞는 두 개를 골라 그것만 씁니다. 전부 쓰려다가는 어느 것도 제대로 나가지 않습니다. 대개 다리 쪽 버튼이 사거리가 길어 견제에 좋고, 팔 쪽 버튼이 빨라서 가까운 거리에서 유리합니다.

다음은 거리 관리입니다. 이 게임은 무리해서 파고들었을 때 돌아오는 손해가 큽니다. 상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사거리 긴 공격으로 끊는 방식이 안정적이고, 체력이 앞서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무리 조작은 상황이 확실할 때만 노립니다. 화려한 장면을 보고 싶어서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역전당하는 것이 이 게임에서 가장 흔한 패배 방식입니다.

블러드 스톰 대전격투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94)

골든 티를 만든 회사

이 게임을 만든 곳은 미국 회사입니다. 1990년대 초, 일본 회사들이 장악한 대전격투 시장에 미국 제작사들이 유혈 표현을 앞세워 뛰어들던 시기의 산물입니다. 당시 미국 오락실에서는 잔혹한 연출을 담은 대전격투가 큰 논란과 함께 큰 인기를 얻고 있었고, 여러 회사가 비슷한 방향의 게임을 내놓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제작사의 그다음 행보입니다. 유혈 격투로 이름을 알린 뒤 이들이 크게 성공시킨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게임, 술집과 상점에 놓이는 골프 게임이었습니다. 미국 아케이드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은 것도 격투가 아니라 그쪽이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는

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만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시절 국내 오락실의 대전격투 자리는 일본 회사들의 대표작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고, 미국산 격투는 어쩌다 한 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조작 체계가 낯설어 누구도 손에 익히려 하지 않았던 것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은 지금 다시 볼 때 오히려 값이 있습니다. 대전격투의 문법이 굳어지기 전, 다른 길을 시도해 본 결과물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되지는 못했지만 왜 정답이 되지 못했는지가 분명하게 보이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