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컬 팽
스컬 팽 (Skull Fang World) · 1996 · Data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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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롤 속도를 플레이어가 정합니다
세로 슈팅에서 화면이 흐르는 속도는 보통 게임이 정해 줍니다. 플레이어는 그 위에서 피하고 쏠 뿐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 규칙을 플레이어에게 넘깁니다. 앞으로 밀면 화면이 빨리 흐르고 뒤로 당기면 느려집니다. 판을 얼마나 빨리 넘길지, 어디서 숨을 고를지를 직접 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996년에 나온 슈팅 중에서도 꽤 개성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스컬 팽(Skull Fang)은 데이터 이스트가 만든 세로 스크롤 슈팅입니다. 비행 항공모함 스컬 팽에서 출격한 전투기를 몰고 세계 각지의 적 부대를 정리하는 구성이고, 기체와 조종사를 골라 시작합니다. 데이터 이스트가 1989년 베이퍼 트레일로 시작한 슈팅 계보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기체 넷은 무기 배치부터 다릅니다
기체 선택이 그냥 색깔 고르기가 아닙니다. 큰 폭탄을 실어서 화면 대부분을 정리해 버리는 기체가 있는가 하면, 총구를 꼬리 쪽에도 달아 두 방향으로 쏠 수 있는 기체도 있습니다. 세로 슈팅에서 뒤를 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부가 기능이 아니라, 뒤로 흘러간 적을 처리하지 못해 끼여 죽는 상황 자체를 없애 주는 능력입니다.
여기에 조종사 선택이 겹칩니다. 기체와 조종사를 따로 고르는 구조라 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자기 손버릇에 맞는 짝을 찾는 재미가 생깁니다. 화력을 앞에 몰아 보스를 빨리 녹이는 조합, 화면을 넓게 훑어 잡졸에 안 밀리는 조합처럼 성격이 갈립니다.
처음이라면 화면 정리 폭탄을 가진 쪽이 편합니다. 적탄이 몰릴 때 일단 지우고 자리를 다시 잡을 수 있어서, 패턴을 외우기 전 단계에서 잔기 소모를 크게 줄여 줍니다. 반대로 판을 어느 정도 외운 뒤에는 두 방향으로 쏘는 기체가 훨씬 안정적입니다.
속도 조절을 언제 쓰느냐가 실력입니다
스크롤 속도가 손안에 있으면 처음에는 무조건 빨리 밀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빠르게 밀면 적이 등장하는 간격이 촘촘해지고, 화면 위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적이 그대로 쌓입니다. 아직 판을 모르는 상태에서 속도를 올리는 것은 스스로 난이도를 올리는 짓입니다.
반대로 계속 느리게만 가도 좋지 않습니다. 느리면 적이 오래 화면에 머물면서 탄을 더 뿌리고, 지형 구간에서는 위험한 자리에 오래 노출됩니다. 요령은 구간 성격에 맞춰 쓰는 것입니다. 적이 없는 이동 구간이나 이미 정리한 자리는 빠르게 밀어 넘기고, 적이 밀집한 구간과 보스 직전에는 속도를 늦춰 자리를 잡고 들어갑니다.
보스전에서도 이 감각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보스가 나오기 전에 화면 아래쪽에서 여유를 두고 자세를 잡아 두면, 첫 패턴에 휘말려 잔기를 날리는 일이 확 줄어듭니다. 급하게 들어갔다가 등장 연출과 첫 탄을 동시에 맞는 것이 이 게임 초보자의 전형적인 사망 패턴입니다.
데이터 이스트가 마지막으로 낸 슈팅입니다
데이터 이스트는 1980년대부터 슈팅, 액션, 대전, 퀴즈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만들던 회사였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발상을 자주 집어넣는 대신 완성도가 들쭉날쭉하다는 평도 함께 따라다녔는데, 이 게임에서는 그 개성이 스크롤 속도 조절이라는 형태로 나왔습니다.
1996년이라는 시점도 중요합니다. 이때는 이미 오락실의 주도권이 대전 격투와 3D 쪽으로 넘어가 있었고, 2D 세로 슈팅은 시장에서 밀려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작품이라 널리 퍼지지 못했고, 데이터 이스트 자신도 이후 슈팅을 더 내지 못했습니다. 뒤에 세가 새턴으로 이식되면서 연습 모드나 보스 연속전 같은 요소가 추가되어 다시 한번 정리된 형태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늦게 온 손님이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1996년은 격투 게임이 자리를 거의 다 차지한 해였습니다. 슈팅 기판은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고, 새 슈팅이 들어와도 한두 달 돌다가 자리를 내주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슈팅을 일부러 찾아다니던 부류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어서, 그때 놓친 사람도 부담 없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기체와 조종사를 바꿔 가며 몇 판만 돌려 봐도 스크롤 속도를 쥐고 있다는 감각이 어떤 것인지 금방 느껴지고, 이것이 왜 흔한 세로 슈팅과 다르게 기억되는지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