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밴스드 배리어블 지오 PC엔진판
어드밴스드 배리어블 지오 (Advanced Variable Geo) · 1994 · TGL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격투 대회에 나온 선수들의 본업이 음식점 종업원이라는 설정은 아무리 봐도 진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 설정을 진지하게 밀고 나갑니다. 앞치마 대신 전투복을 입고 링에 오른 여성들이 정식 격투 게임의 규칙에 따라 싸웁니다. 90년대 중반 일본 게임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뻗어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어드밴스드 배리어블 지오(Advanced Variable Geo)는 1994년 PC엔진 CD로 나온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여성 캐릭터들만으로 구성된 명단에서 한 명을 골라, 상대와 일대일로 맞붙어 체력을 깎는 구조를 따릅니다. 원래 PC용으로 나온 시리즈를 콘솔로 옮기면서 격투 게임 쪽에 무게를 실은 판본입니다.
격투 게임으로서의 구성
기본 형태는 이 시기 대전 격투 게임의 표준을 따릅니다. 좌우로 마주 선 두 캐릭터가 약공격과 강공격을 섞어 쓰고, 방향키를 돌리거나 꺾는 커맨드로 필살기를 냅니다. 시간 제한 안에 상대의 체력을 먼저 비우면 한 라운드를 가져갑니다.
캐릭터마다 싸우는 방식이 뚜렷하게 다릅니다. 멀리서 날아가는 기술을 던지며 거리를 재는 쪽이 있고, 빠르게 붙어 연속으로 몰아치는 쪽이 있습니다. 잡기 기술을 주력으로 쓰는 캐릭터도 있어서, 어떤 캐릭터를 고르느냐에 따라 같은 상대를 상대하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조작의 난이도는 중간 정도입니다. 커맨드가 지나치게 까다롭지는 않아서 몇 판 해 보면 필살기를 꺼낼 수 있게 되지만, 상대를 안정적으로 이기려면 거리 조절과 반격 타이밍을 익혀야 합니다. 무작정 기술만 던지면 헛친 틈을 잡혀 크게 당합니다.
PC엔진 CD라는 그릇
PC엔진 CD는 CD 매체를 일찍 도입한 기기입니다. 그 덕에 이 게임에는 음성이 들어가 있고, 배경 음악도 CD 음질로 재생됩니다. 캐릭터들이 대사를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당시 카트리지 기반 게임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었고, 이 게임이 내세운 강점 중 하나였습니다.
반면 CD에서 데이터를 읽어 오는 시간 때문에 화면 전환 사이에 기다림이 생깁니다. 대전 격투 게임처럼 짧은 판을 반복하는 장르에서 이 기다림은 꽤 신경 쓰이는 요소입니다. 당시 CD 기반 게임이 공통으로 안고 있던 문제였습니다.
그래픽 면에서는 PC엔진의 색 표현 한계 안에서 캐릭터를 크게 그려 넣었습니다. 화면에서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움직임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다만 오락실 격투 게임의 부드러운 동작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움직임이 다소 뚝뚝 끊기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알아 둘 것
이 게임에서 이기려면 먼저 자기 캐릭터의 주력 기술 두세 개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기술을 다 쓰려고 하면 손이 꼬여 아무것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견제용으로 쓸 기술 하나, 상대가 뛰어올 때 받아칠 기술 하나, 붙었을 때 넣을 기술 하나를 정해 두면 대부분의 상황을 넘길 수 있습니다.
상대 컴퓨터는 이쪽의 습관을 읽는 편이라, 같은 기술만 반복하면 금세 대응당합니다. 특히 필살기를 아무 때나 던지는 버릇은 후반 상대에게 그대로 반격거리를 줍니다. 상대가 움직인 다음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승률이 올라갑니다.
가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게임의 캐릭터들은 한 번 몰아치기 시작하면 연속으로 체력을 깎아 내므로, 흐름을 빼앗겼을 때 억지로 반격하려다 더 크게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막고 상대의 공격이 끊기는 순간을 기다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 시기 격투 게임 시장
90년대 중반은 격투 게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때입니다. 오락실에서 시작된 열기가 가정용 기기로 옮겨 가면서, 크고 작은 회사들이 저마다 격투 게임을 내놓았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언가 차별점이 필요했고, 이 게임은 여성 캐릭터로만 구성된 명단과 CD 매체의 음성을 그 차별점으로 삼았습니다.
원작이 PC 게임에서 출발한 시리즈라는 점도 이 게임의 성격을 설명해 줍니다. 캐릭터 하나하나에 배경 설정과 대사가 붙어 있고, 대전 사이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성이 그 흔적입니다. 순수하게 대전의 완성도로 승부하는 게임이라기보다, 캐릭터를 앞세운 게임에 가깝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알려졌나
PC엔진은 한국에서 정식으로 널리 보급된 기기가 아니었습니다. 일부 수입 경로로 들어온 기기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만 돌았고, 이 게임 역시 일본어 화면에 일본 내수용으로만 나왔기 때문에 접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 게임은 오락실에서 다 같이 붙던 기억보다는, 게임 잡지의 소개 기사나 나중에 찾아본 자료를 통해 알게 되는 쪽에 가깝습니다. 당시 일본 게임 시장이 어떤 소재와 방향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로서의 의미가 더 큽니다. 격투 게임으로서의 짜임새는 무난한 수준이니, 이 시기 콘솔 격투 게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붙어 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