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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가루다

에스프가루다 (Espgaluda v100 Japan) · 2003 ·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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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탄막 슈팅에서 적탄을 그냥 없애 버리는 게 아니라, 그 탄을 통째로 금덩이로 바꿔 점수로 바꿔 먹는 게임이 있습니다. 화면을 가득 메운 분홍색 탄이 한순간에 황금빛으로 굳고, 그것이 전부 점수가 되어 빨려 들어가는 광경은 처음 보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목숨을 지키려고 쓰는 방어 수단이 동시에 가장 큰 벌이 수단이라는 이 발상 하나로, 이 게임은 같은 회사의 다른 작품들과 확실히 구분됩니다.

에스프가루다(Espgaluda)는 케이브가 만든 세로 스크롤 슈팅입니다. 위쪽에서 쏟아지는 적과 적탄을 피하며 화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이른바 탄막 슈팅의 전형적인 틀을 따릅니다. 다만 여기에 '각성'이라는 고유 시스템이 붙어 있어서, 단순히 피하기만 하는 게임이 아니라 언제 각성을 켜고 언제 끌지를 계속 판단하는 게임이 됩니다.

에스프가루다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2003)

각성이라는 시스템

기본 조작은 이동, 샷, 그리고 각성 버튼입니다. 각성을 켜면 캐릭터가 변신하면서 시간의 흐름이 느려집니다. 적탄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때문에, 평소라면 도저히 반응할 수 없는 밀도의 탄도 몸을 비틀어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공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각성을 유지하는 동안 보유한 자원이 계속 깎이고, 자원이 바닥나면 강제로 풀리면서 잠시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여기에 각성을 켠 상태에서 적을 쓰러뜨리면, 그 적이 뿌리던 탄이 금덩이로 바뀝니다. 이 금덩이는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점수가 되는데, 각성 중에 얼마나 많은 적을 한꺼번에 정리하느냐에 따라 벌이가 몇 배로 달라집니다. 즉 각성은 위기를 넘기는 도구인 동시에, 점수를 뽑아내는 유일한 창구입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의 플레이는 위험할 때 각성을 켜는 것이 아니라, 벌이가 큰 구간을 미리 알고 그 구간에 자원을 몰아 쓰는 모양이 됩니다. 처음 잡은 사람은 반대로 하기 쉽습니다. 무서울 때마다 각성을 켜다 보면 정작 큰 무리가 몰려오는 곳에서 자원이 없습니다.

에스프가루다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2003)

두 기체, 두 가지 성격

고를 수 있는 기체는 둘입니다. 하나는 넓게 퍼지는 사격으로 화면을 훑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모이는 사격으로 한 점을 빠르게 깎아내는 쪽입니다. 이 차이는 취향 문제로 끝나지 않고 진행 방식 자체를 바꿉니다.

넓게 퍼지는 쪽은 잡졸이 사방에서 나오는 구간에서 편합니다. 조준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기 때문에, 피하는 데 집중할 여유가 생깁니다. 대신 보스처럼 덩치 하나만 남는 상대에게는 화력이 흩어져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동안 맞아야 하는 탄의 총량이 늘어납니다.

모이는 쪽은 정반대입니다. 보스전이 눈에 띄게 짧아지는 대신, 잡졸을 하나하나 조준해야 해서 손이 바쁩니다. 각성 중에 탄을 금덩이로 바꿀 때도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처리하는 쪽이 유리하다 보니, 이 기체로 점수를 뽑으려면 적이 겹치는 순간을 노려야 합니다. 처음이라면 퍼지는 쪽으로 전체 흐름을 익힌 뒤에 바꿔 보는 편이 수월합니다.

막히는 지점과 넘기는 요령

탄막 슈팅을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기체 전체를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장르에서 판정은 기체 그림 전체가 아니라 한가운데의 아주 작은 점입니다. 겉보기에 날개가 탄에 스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데, 받아들이고 나면 통과할 수 있는 틈이 갑자기 훨씬 넓어 보입니다.

두 번째는 시선입니다. 초보는 자기 기체를 봅니다. 그러면 탄이 눈앞에 닿아서야 반응하게 되고, 이미 늦습니다. 시선은 기체보다 조금 위, 탄이 만들어지는 곳에 두고 기체는 주변시로 관리하는 편이 낫습니다. 각성으로 시간을 늦추면 이 연습을 하기가 한결 쉽습니다.

세 번째는 움직이는 양입니다. 위험해 보이면 화면 끝까지 크게 도망가고 싶어지는데, 그러다 벽에 몰려서 죽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탄막은 대개 작은 각도 차이로 벌어지기 때문에, 짧게 조금씩 움직여서 틈으로 들어가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케이브라는 회사와 그 시절

케이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탄막 슈팅이라는 장르를 사실상 자기 색으로 굳혀 놓은 회사입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되 반드시 빠져나갈 길을 남겨 두는 탄 배치, 작은 판정, 그리고 점수를 뽑아내기 위해 일부러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배수 시스템이 이 회사 작품의 공통점입니다. 에스프가루다는 그 계보 안에서 각성이라는 장치로 위험과 벌이를 하나로 묶어 낸 작품입니다.

시기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2000년대 초는 오락실 슈팅이 이미 소수 취향으로 좁아진 뒤였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 없이 잘하는 사람들만 남아 점점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있었습니다. 각성으로 시간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은 그 흐름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구간을 실력이 아니라 자원 관리로 넘길 여지를 준 것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 무렵 세로 슈팅 기판은 이미 흔치 않았습니다. 대전 격투와 리듬 게임, 그리고 사람이 몰리는 대형 체감 기기가 자리를 차지한 뒤였기 때문에, 이런 게임은 구석 자리에 한 대 놓여 늘 같은 사람이 앉아 있는 식이었습니다. 옆에서 구경하다가 금덩이가 쏟아지는 화면을 보고 앉았다가, 한 판을 못 넘기고 일어난 기억이 있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무엇을 목표로 삼을 것인가

이 게임은 끝까지 가는 것과 점수를 뽑는 것이 꽤 다른 놀이입니다. 그냥 클리어가 목표라면 각성을 아끼지 말고 위험한 구간마다 켜서 넘기면 됩니다. 점수가 목표라면 반대로, 죽지 않을 자신이 있는 구간에서는 각성을 참았다가 적이 많이 겹치는 순간에 몰아 써야 합니다.

처음 잡는다면 우선 각 스테이지가 어떤 순서로 적을 내보내는지 외우는 데 집중하는 편이 좋습니다. 탄막 슈팅은 반사신경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억력 게임에 가깝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나오는지 알고 있으면, 같은 화면이라도 체감 난이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