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트론
오비트론 (Orbitron) · 1982 · Com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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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남지 않은 1982년의 기판
오락실 역사에서 1982년은 유난히 붐볐던 해입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갤럭시안이 만든 성공을 보고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회사가 슈팅 기판을 찍어냈고, 그중 대부분은 몇 달 팔리다 사라졌습니다. 이 게임도 그 무리에 속합니다. 만든 회사의 이름도, 게임의 이름도 지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게임을 지금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물건의 가치입니다. 크게 성공한 몇 편만 기억되지만, 실제로 그 시절 오락실을 채우고 있던 것은 이런 무명 기판들이었습니다. 유명작 옆자리에 놓여 있다가 손님이 줄면 조용히 다른 기판으로 교체되던, 이름 없는 대다수의 게임입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Orbitron은 화면이 한 장에 고정된 채로 진행되는 초기형 슈팅입니다. 화면 아래쪽에 내 기체가 있고, 위쪽에서 적이 내려오거나 움직이며, 나는 좌우로 이동하면서 위로 쏩니다. 조작은 좌우 이동과 발사 버튼이 전부이고,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십 초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판의 흐름도 단순합니다. 화면에 있는 적을 다 없애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고, 그때마다 적이 조금씩 빨라지거나 더 적극적으로 공격해 옵니다. 적의 탄이나 몸통에 닿으면 기체 하나를 잃고, 남은 기체가 없으면 게임이 끝납니다. 끝이라는 것이 따로 없고, 얼마나 오래 버티며 점수를 쌓느냐가 유일한 목표입니다.
이 시기 게임에 이야기나 스테이지 구성 같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반복되는 화면이 조금씩 빨라질 뿐이고, 그 반복 안에서 자기 최고 점수를 갱신하는 것이 즐길 거리의 전부였습니다. 오락실 기판 옆에 종이를 붙여 놓고 점수를 적던 시절의 물건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조심할 것
요즘 게임에 익숙한 사람이 이런 고전 슈팅을 잡으면 대개 두 가지에서 걸립니다. 하나는 내 기체가 생각보다 크고 판정도 관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피하는 플레이는 통하지 않고, 넉넉히 거리를 두고 움직여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탄의 제한입니다. 이 시기 기판들은 대개 화면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내 탄의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그래서 버튼을 마구 연타해도 실제로는 앞서 쏜 탄이 화면 밖으로 나가거나 무언가에 맞은 뒤에야 다음 탄이 나갑니다. 빗나가는 탄 한 발이 그만큼 손해라는 뜻이고, 그래서 이 시기 슈팅은 마구 쏘는 게임이 아니라 겨냥해서 쏘는 게임이었습니다.
요령은 화면 아래에서 좌우 폭을 크게 쓰지 말고, 적이 오는 흐름을 보며 조금씩 자리를 옮기는 것입니다. 급하게 반대편 끝까지 달려가면 중간에 내려오는 적에게 부딪히기 쉽습니다.
같은 시기 다른 게임들 사이에서
이 시기 고정 화면 슈팅은 대체로 두 계열로 나뉩니다. 적이 대형을 이루고 있다가 하나씩 내 쪽으로 급강하하는 계열과, 화면을 채운 적을 차근차근 지워 나가는 계열입니다. 어느 쪽이든 화면 한 장 안에서 승부가 나고, 좌우 이동과 발사만으로 굴러간다는 점은 같습니다.
무명 기판들은 대개 잘나가는 게임의 구조를 가져와 그림과 세부 규칙만 바꾼 물건이었습니다. 저작권 개념이 지금처럼 정리되기 전이라 이런 일이 흔했고, 그중에는 원작보다 조작감이 나은 경우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판을 지금 해 보는 재미는, 어느 유명작을 참고했는지를 화면에서 알아보는 데 있기도 합니다.
그 시절 오락실 사정
1980년대 초 한국의 오락실은 아직 지금 떠올리는 모습과 달랐습니다. 문방구 앞이나 구멍가게 한 켠에 기판 한두 대를 놓아둔 형태가 많았고, 정식 수입품보다 복제 기판이 훨씬 흔했습니다. 화면에 무슨 글자가 떠 있든 아이들은 그냥 우주 게임이라고 불렀고, 기판마다 정확한 이름이 붙어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무명작에 국내 통칭이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름 없이 놓여 있다가 사라진 물건이고, 그 시절 동전 몇 개를 받아 간 뒤 잊혔습니다. 지금 다시 잡아 보면 몇 분이면 규칙을 다 알게 되지만, 그 몇 분 안에 40년 전 오락실이 어떤 곳이었는지가 꽤 정직하게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