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라
이바라 (Ibara 2005 03 22 Master Ver) · 2005 ·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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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브 화면에 나타난 다른 회사의 손맛
탄막 슈팅에 익숙한 사람이 이 게임을 처음 켜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낍니다. 만든 회사는 분명 그 탄막 슈팅의 대표 주자인데, 화면에 깔리는 탄의 성격도 점수를 버는 방식도 그 회사 다른 작품들과 다릅니다. 오히려 1990년대 초 다른 회사가 만들던 슈팅의 감각에 훨씬 가깝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중심에 선 개발자가 원래 다른 회사에서 독특한 슈팅들을 만들어 온 사람이고, 그 사람의 색깔이 새 회사의 화면 위에 그대로 옮겨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이바라(Ibara)는 세로로 긴 화면을 위로 밀고 올라가는 종스크롤 슈팅입니다. 플레이어는 소형 항공기를 몰고 지상과 공중의 적을 부수며 나아가고, 스테이지 끝에서 거대 보스를 상대합니다. 여기까지는 이 장르의 표준이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밝고 화려한 미래풍 대신 어둡고 무거운 전쟁 정서를 깔고 있어서, 화면 전체의 색조와 폭발 연출이 훨씬 묵직합니다.
가장 큰 차이는 점수를 버는 구조입니다. 흔한 탄막 슈팅이 적을 계속 잡아 배율을 유지하는 연쇄 방식을 쓰는 데 비해, 이 계열 작품들은 화면에 나타나는 아이템을 특정 조건에서 처리해 그 가치를 키우는 쪽입니다. 그래서 그냥 앞으로 나아가며 쏘기만 해도 클리어는 되지만, 점수를 노리는 순간 무엇을 언제 부술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 이중 구조가 이 게임을 오래 붙잡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무기 선택과 봄
기체와 무기 계통을 골라서 시작합니다. 선택에 따라 화력이 앞으로 집중되기도 하고 넓게 퍼지기도 하며, 그에 따라 적을 처리하는 순서 자체가 달라집니다. 앞으로 집중되는 화력은 보스전에서 유리하지만 좌우에서 몰려오는 잡몹을 놓치기 쉽고, 넓게 퍼지는 화력은 그 반대입니다. 자기가 어디서 자주 죽는지 알면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도 정해집니다.
봄은 이 장르에서 늘 그렇듯 목숨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인 동시에 점수를 버는 도구입니다. 위험한 순간에 즉시 터뜨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지만, 익숙해지면 아이템이 몰린 자리를 노려 터뜨려 한 번에 크게 벌기도 합니다. 초보자에게는 조언이 간단합니다. 죽을 것 같으면 그냥 누르십시오. 봄을 손에 쥔 채로 죽는 것이 이 장르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아까운 실수입니다.
막히는 지점과 요령
이 게임이 어렵게 느껴지는 첫 번째 이유는 탄의 성격입니다. 아주 느린 대신 화면을 빈틈없이 채우는 방식보다는, 조준해서 곧게 날아드는 빠른 탄이 섞여 나옵니다. 이런 탄은 넓게 피하려 들면 못 피합니다. 적이 쏘는 순간 조금만 옆으로 움직여 조준선을 벗어난 다음, 탄이 지나간 자리로 다시 들어가는 식으로 짧게 반응해야 합니다. 이걸 흔히 잘게 흔들며 유도한다고 표현하는데, 몸에 붙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두 번째는 지상물 처리입니다. 종스크롤에서 지상에 박힌 포대는 방치하면 계속 탄을 뿌려 화면을 좁힙니다. 화면 위쪽에 나타나는 순간 바로 지워 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신경 쓰다 보면 뒤늦게 탄이 쌓여 빠져나갈 곳이 없어집니다.
세 번째는 기체의 판정입니다. 이 장르가 다 그렇듯 실제 피격 범위는 기체 중앙의 아주 작은 점 하나입니다. 눈에 보이는 기체 전체가 아니라 그 점만 생각하고 움직이면 통과할 수 없어 보이던 틈이 갑자기 넉넉해 보입니다. 처음 붙잡는 사람에게 이것 하나만 알려 줘도 진행 거리가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케이브라는 회사와 이 작품의 자리
이 회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종스크롤 슈팅만 파고든 곳입니다. 슈팅 장르가 이미 오락실의 주력에서 밀려난 뒤에도 이 회사만은 계속 신작을 냈고, 탄을 많이 뿌리되 느리게 만들고 피격 판정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설계로 새로운 균형을 찾아냈습니다. 화면은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피할 수 있게 만들어 두는 것이 이 회사 게임의 공통 문법입니다.
그 회사 작품군 안에서 이 게임은 조금 이질적인 자리에 있습니다. 다른 계보의 감각을 가진 개발자가 주도했고, 그래서 정서와 점수 체계가 회사 대표작들과 뚜렷이 다릅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 개발자가 이어 만든 후속 계열 작품들도 같은 색깔을 유지했습니다. 익숙한 회사 이름 아래에서 다른 취향을 만나 보는 재미가 있는 셈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그리고 지금
2005년의 한국 오락실에는 이런 종스크롤 슈팅이 들어올 자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형 리듬 게임과 체감형 기계가 앞자리를 차지했고, 2D 슈팅은 큰 오락실 구석에 한두 대 남아 있는 정도였습니다. 신작 슈팅이 정식으로 들어오는 일 자체가 드물었으니, 이 게임을 그 시절 국내 오락실에서 봤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국내에서 통용된 별칭 없이 원제 그대로 불립니다. 지금 브라우저에서 바로 켜 볼 수 있게 된 뒤에야 제대로 만나 보는 사람이 많은데, 오히려 그 편이 낫습니다. 이 장르는 동전을 아까워하지 않고 반복해서 붙어야 늘기 때문입니다. 첫 판에 몇 초 만에 죽더라도 다음 판에는 확실히 더 멀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