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 셋 윌리
제트 셋 윌리 (Jet SET Willy) · 1985 · Hudson 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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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끝난 대저택에서, 벼락부자가 된 광부 윌리가 잠자리에 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가정부가 팔짱을 끼고 문 앞을 막아섭니다. 어질러진 것을 다 치우기 전에는 잘 수 없다는 겁니다. 이 한 줄짜리 설정에서 시작한 게임이 8비트 시대 플랫폼 게임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저택에 방이 예순 개가 넘고, 그 방들이 서로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저택 전체가 하나의 미로
제트 셋 윌리(Jet Set Willy)는 한 화면이 한 방인 플랫폼 게임입니다. 윌리를 좌우로 움직이고 점프시켜, 방 안에 흩어진 반짝이는 물건을 남김없이 주우면 됩니다. 조작은 좌우와 점프뿐, 공격 수단은 아예 없습니다.
특별한 것은 이 방들이 스테이지 1, 2, 3처럼 순서대로 늘어서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화면 끝으로 걸어 나가면 옆방으로 넘어가고, 그렇게 이어진 방들이 하나의 거대한 저택을 이룹니다. 침실, 욕실, 부엌, 술 창고, 지붕, 심지어 저택 밖의 해변과 이상한 공간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플레이어가 직접 돌아다니며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야 합니다. 이 게임을 제대로 해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종이에 방 배치를 그려 가며 했다는 이야기를 남기는 이유입니다.
공격할 수 없다는 규칙
방마다 정해진 궤도를 오가는 물체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적이라기보다 움직이는 함정에 가깝습니다. 없앨 수 없고, 멈출 수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건 궤도를 눈으로 외우고 틈을 노려 지나가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이 게임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반사신경보다 관찰과 기억을 요구합니다. 한 방에 들어가면 먼저 서서 물체들이 어떻게 도는지 한 바퀴를 지켜보고, 안전한 타이밍을 찾은 다음에 움직이는 게 정석입니다. 성급하게 뛰어들면 물건 하나 줍기도 전에 목숨이 사라집니다.
점프도 까다롭습니다. 한번 뛰면 착지할 때까지 방향을 바꿀 수 없습니다. 뛰기 전에 도착 지점을 정확히 정해 두어야 하고, 애매하다 싶으면 뛰지 않는 게 낫습니다. 게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그대로 죽기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는 길도 위로 올라가는 길만큼이나 신중하게 골라야 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
이 게임의 가장 큰 벽은 난이도 자체가 아니라 방향 감각입니다. 침실에서 출발해 몇 방만 돌아다니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되고, 이미 치운 방을 또 헤매게 됩니다. 초반에는 욕심내지 말고 침실 주변 몇 개 방만 확실하게 익히면서 저택의 뼈대를 잡는 편이 좋습니다.
목숨 관리도 중요합니다. 잔기가 줄어들면 마지막까지 남는 건 결국 안전하게 통과하는 법을 아는 방의 수입니다. 한 방을 확실하게 뚫는 방법을 익혀 두면 그 방은 다시 지나갈 때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안전한 방을 하나씩 늘려 가는 것이 진행의 실체입니다.
매닉 마이너의 다음 이야기
이 게임은 앞선 작품인 매닉 마이너의 후속작입니다. 앞 작품은 스무 개 남짓한 방을 순서대로 통과하는 구조였는데, 이 작품에서 그 순서를 없애고 전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하나의 저택으로 묶었습니다. 8비트 컴퓨터 게임에 오픈 월드에 가까운 구조를 처음으로 들여온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원작은 ZX 스펙트럼용으로 나왔고, 인기가 커지면서 당시의 거의 모든 가정용 컴퓨터로 옮겨졌습니다. MSX판도 그 흐름에서 나온 이식작입니다. MSX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식이 존재하는데, 각각 만든 곳이 다르고 시작 목숨 수, 음악, 화면 처리 방식이 다릅니다. 하드웨어 스프라이트를 쓰지 않고 소프트웨어로 적을 그리는 쪽은 그만큼 화면이 느리게 움직입니다. 같은 게임인데도 어느 판으로 하느냐에 따라 체감이 꽤 달라집니다.
MSX 시절의 한국
한국에서 MSX는 오락실과는 다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대우 아이큐 같은 국산 MSX가 학습용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집에 들어왔고, 실제로는 게임기로 훨씬 많이 쓰였습니다. 이 게임처럼 영국에서 건너온 작품은 일본 게임만큼 널리 퍼지지는 않았지만, 컴퓨터 잡지의 소프트웨어 소개란이나 복사 테이프를 통해 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설명서 없이 화면만 보고 시작하면 무엇을 하라는 건지조차 알기 어려운 게임이라, 한국에서는 유독 진입 장벽이 높았을 겁니다. 그래도 방을 하나씩 뚫어 가며 저택의 구조를 알아 가는 재미는 지금 해 봐도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