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909
줌 909 (Zoom 909) · 1985 · Pony Can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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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오락실에서는 이 게임이 벅 로저스라는 이름으로 걸려 있었습니다. 미국의 오래된 우주 활극 주인공 판권을 사서 붙인 것인데, 일본에서는 판권 없이 원래 제목 그대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같은 게임인데 지역에 따라 주인공도 다르고 제목도 다릅니다. 게임 내용은 거의 같고 그림 몇 개만 달라진 정도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 시절 게임에 이야기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주선을 몰고 앞으로 날아가는 화면에는 누구를 갖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줌 909(Zoom 909)는 화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점에서 우주선을 몰며 앞을 막는 것들을 쏘고 피하는 3인칭 슈팅 게임입니다. 오락실에서는 확대 축소를 하드웨어로 처리하는 특수 기판을 써서 속도감을 냈고, 그 감각을 가정용 기계로 옮긴 것이 이 카트리지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시점
이 게임이 나온 당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시점입니다. 그때까지 오락실 슈팅은 대부분 옆에서 보거나 위에서 보는 평면이었는데, 이 게임은 화면 안쪽으로 계속 나아가는 느낌을 냅니다. 멀리 점처럼 보이던 것이 순식간에 커지면서 눈앞을 스쳐 가는 그 표현이 당시로서는 대단한 볼거리였습니다.
조작은 우주선을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쏘는 것이 전부입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좌우 감각이 평면 게임과 다릅니다. 화면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물체가 옆으로 빠르게 흘러가므로, 가장자리에 붙어 있으면 판단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가능한 한 중앙 근처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비켜 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지면 위를 낮게 나는 구간과 하늘로 올라가는 구간이 번갈아 나옵니다. 낮은 구간에서는 땅에 서 있는 구조물을 피하는 것이 주된 일이고, 높은 구간에서는 날아오는 적을 상대합니다. 이 전환이 게임의 리듬을 만듭니다.
처음이 어려운 이유
이런 시점의 게임에서 초보가 가장 많이 죽는 이유는 눈이 적응하지 못해서입니다. 평면 게임에서는 물체의 위치가 화면 좌표로 바로 읽히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시점에서는 크기 변화를 보고 거리를 판단해야 합니다. 이 감각은 몇 판 하면 붙습니다.
두 번째 요령은 조기 회피입니다. 멀리서 무언가 보이면 그것이 커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미리 옆으로 비켜 두는 편이 좋습니다. 가까워진 다음에 피하려 하면 이동 거리가 짧아 보여도 실제로는 화면 밖으로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반응이 늦습니다.
세 번째는 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점수는 살아 있어야 쌓이고, 앞을 막는 것들 중 상당수는 그냥 비켜 가도 되는 대상입니다. 굳이 정면으로 마주 보고 쏘려다가 부딪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판과 이식 사정
원본 기판은 확대 축소 표현을 전용 회로로 처리했습니다. 프로그램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가 그림을 늘리고 줄이는 방식이라, 당시 일반 기판으로는 흉내 내기 어려운 부드러움이 나왔습니다. 이 회사는 이런 방향을 계속 밀어붙여 몇 해 뒤 체감형 대형 기계들로 이어 갑니다.
문제는 가정용 이식입니다. 8비트 기계에는 그런 전용 회로가 없으니, 모든 것을 소프트웨어로 흉내 내야 합니다. 크기가 다른 그림을 여러 장 준비해 두고 차례로 바꿔 그리는 식인데, 단계가 성길수록 물체가 뚝뚝 끊기며 커집니다. 그럼에도 속도감을 어느 정도 살려 낸 것이 이 이식판의 성과입니다.
같은 기계에 이 게임의 이식판이 서로 다른 회사 손을 거쳐 두 가지 나온 사정도 있습니다. 이 시기 일본 가정용 시장은 여러 유통사가 같은 원작을 각자 옮기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국내 MSX 사용자에게 이 게임은 화면부터 눈에 띄는 부류였습니다. 대부분의 카트리지가 평면이던 시절에 혼자 안쪽으로 날아가는 화면을 보여 주니, 처음 켜면 일단 신기했습니다. 다만 신기함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판이 반복되는 구조라 몇 번 하고 나면 볼 것을 다 본 느낌이 들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게임이 남긴 것은 분명합니다. 화면 안으로 들어가는 시점이 어떤 쾌감을 주는지 처음 널리 보여 준 축에 들고, 그 감각은 이후 레이싱과 슈팅 전반으로 퍼져 나갑니다. 지금 짧게 잡아 보면 그 출발점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