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도노사마의 야망
퀴즈 도노사마의 야망 (Quiz Tonosama no Yabou Japan) · 1991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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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전후 일본 오락실에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낯선 장르 하나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를 읽고 답을 고르는 퀴즈 게임입니다. 액션도 슈팅도 아니고 손가락이 빠를 필요도 없는데, 오락실 기판으로 만들어져 어엿한 한 대를 차지했습니다. 이 게임은 그 유행의 한복판에서 캡콤이 내놓은 작품이고, 퀴즈에 전국시대라는 옷을 입혀 영지를 넓혀 가는 구조를 얹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퀴즈 도노사마의 야망(Quiz Tonosama no Yabou)은 문제를 맞혀 나가며 세력을 키우는 퀴즈 게임입니다. 화면에 문제와 선택지가 나오고 제한 시간 안에 답을 고르면 되는데, 그 결과가 단순히 점수로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지도 위의 영지를 얻고 잃는 형태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문제 하나하나가 전투처럼 느껴지고, 다음 상대를 고르는 선택이 생깁니다.
제목의 도노사마는 일본에서 한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를 부르던 말입니다.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여러 세력이 다투는 그림 위에 퀴즈를 얹은 것이고, 이런 구성은 당시 일본 오락실 퀴즈 게임이 즐겨 쓰던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만 계속 푸는 것은 금세 지루해지지만, 이겨서 무언가를 얻는다는 틀이 씌워지면 다음 판을 하고 싶어집니다.
한 판의 흐름
조작은 대체로 방향 입력과 버튼 몇 개면 충분합니다.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 전부이고, 제한 시간이 있어 오래 고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긴장을 만드는 것은 손이 아니라 시계입니다. 아는 문제인데 답이 떠오르지 않아 시간이 줄어드는 순간의 초조함이 이 장르의 핵심입니다.
한 판은 문제를 연달아 풀며 나아가는 구조입니다. 틀리면 목숨이나 기회가 줄어들고, 다 잃으면 게임이 끝납니다. 오락실 기판이니 동전을 더 넣어 이어 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고, 그래서 뒤로 갈수록 문제가 어려워지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초반에는 상식 수준의 문제가 나오다가 점점 좁은 분야로 파고드는 식입니다.
지금 하기 어려운 이유와 그럼에도 하는 이유
솔직히 말해 이 장르는 한국어를 쓰는 사람에게 가장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문제가 전부 일본어이고, 그것도 일본의 시사와 문화, 연예인과 지명에 관한 내용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일본어를 읽을 수 있어도 그 시절 일본에서만 통하던 화제라면 답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퀴즈 기판은 국내 오락실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게임을 켜 볼 가치가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여기 실린 문제들이 1991년 일본에서 무엇이 상식이었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물의 이름이 설명 없이 나오고 어떤 사건이 문제로 만들어졌는지를 보면, 그때 사람들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게임이라기보다 그 시절의 단면에 가깝습니다.
캡콤이 만든 퀴즈 게임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와 록맨으로 알려진 회사이지만, 1990년대 초에는 퀴즈 게임도 여러 편 내놓았습니다. 이 시기 캡콤의 퀴즈물은 문제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세계관과 진행 구조를 얹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캐릭터를 그리고 화면을 꾸미는 데 능한 회사가 만들었으니, 문제 사이사이의 그림과 연출이 다른 회사 퀴즈물보다 공을 들인 편입니다.
오락실 입장에서도 퀴즈 기판은 나름의 쓸모가 있었습니다. 격투 게임 앞에는 사람이 몰리고 줄이 서지만, 퀴즈 기판은 혼자 조용히 오래 앉아 있는 손님을 붙잡았습니다. 손목이 아플 일도 없고 옆 사람과 겨룰 필요도 없어서, 오락실 안에서 성격이 다른 한 자리를 맡았습니다.
퀴즈 게임이라는 장르의 시절
퀴즈 게임이 오락실에서 하나의 장르로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 사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터넷도 검색도 없던 때라 무언가를 안다는 것 자체가 값을 가졌고, 아는 것을 겨루는 놀이가 텔레비전에서도 인기였습니다. 오락실 퀴즈 기판은 그 방송의 감각을 동전 하나로 옮겨 온 것에 가깝습니다.
이 유행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다 풀고 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새 문제를 넣으려면 기판을 바꿔야 했기 때문입니다. 격투 게임이 오락실을 휩쓸면서 퀴즈물은 빠르게 자리를 잃었습니다. 지금 남은 것은 짧게 타올랐던 한 장르의 기록이고, 이 게임은 그 기록 가운데 캡콤이 남긴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