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앤 드래곤즈
퀴즈 앤 드래곤즈 (Quiz Dragons Capcom Quiz Game 920701 USA) · 1992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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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콤이 만든 퀴즈 게임
캡콤이라는 이름은 스트리트 파이터와 록맨, 벨트스크롤 액션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런 회사가 퀴즈 게임을 냈다는 것도 의외인데,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이 게임이 일본어가 아니라 영어로 된 문제를 낸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북미 오락실을 겨냥해 만든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이 게임을 다른 퀴즈 기판들과 다른 자리에 놓습니다. 그 시절 오락실 퀴즈물은 거의 전부 일본 내수용이었고, 언어 때문에 국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 벽을 넘어 보려고 아예 처음부터 다른 언어권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캡콤이 북미 시장에서 얼마나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퀴즈 앤 드래곤즈(Quiz & Dragons)는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퀴즈 어드벤처입니다. 캐릭터를 하나 고르고, 지도 위를 나아가며, 만나는 상대와 문제로 겨룹니다. 조작은 보기를 고르는 것뿐이라 레버와 버튼만 있으면 되고, 손가락 실력은 필요 없습니다.
한 판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문제가 제시되고 제한 시간 안에 답을 고릅니다. 맞히면 유리해지고 앞으로 나아가며, 틀리면 손해를 봅니다. 손해가 쌓이면 그 자리에서 게임이 끝나고, 이어 하려면 동전을 더 넣어야 합니다. 반응 속도보다는 아는 것의 양과, 모르는 문제를 만났을 때의 판단이 승패를 가릅니다.
문제는 여러 분야로 나뉘어 있습니다. 역사, 과학, 스포츠, 대중문화 같은 갈래가 있고, 어느 분야가 나오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강점이 갈립니다. 둘이 앉아 대전을 하면 이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서, 서로가 어디에 밝고 어디에 어두운지가 몇 문제 만에 보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영어로 되어 있으니 일본어 퀴즈물보다는 접근이 쉽지만, 그래도 벽은 있습니다. 문제의 상당수가 1990년대 초 북미의 상식과 대중문화를 다룹니다. 그 시절 미국 방송이나 스포츠, 지역 지리에 관한 문제는 영어를 읽을 수 있어도 답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령은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제한 시간이 지나면 틀린 것과 마찬가지로 손해를 보므로, 모르겠으면 일단 아무거나 고르는 편이 언제나 낫습니다. 그리고 문제 전체를 다 읽으려 하기보다 핵심 단어 하나를 먼저 잡고 보기를 훑는 편이 시간을 아낍니다.
캐릭터를 고르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게임은 캐릭터마다 잘하는 분야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어서, 자기가 자신 있는 분야와 맞는 쪽을 고르는 것이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는 아무거나 골라 보고, 어느 분야에서 자꾸 막히는지 확인한 다음 다시 고르면 됩니다.
퀴즈 게임에 모험을 얹는다는 것
퀴즈 게임의 오랜 약점은 화면이 단조롭다는 것입니다. 문제만 계속 뜨면 옆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볼 것이 없고, 하는 사람도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이 시기 퀴즈 기판들은 저마다 다른 껍데기를 씌웠습니다. 격투 게임의 체력 게이지를 가져오기도 하고, 보드 게임의 주사위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이 고른 것은 판타지 롤플레잉입니다. 지도를 나아가고 몬스터를 만나고 캐릭터가 성장하는 틀 안에 문답을 넣었더니, 문제를 맞히는 행위가 곧 모험을 진행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진행 구조로 붙어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 퀴즈물 중에서는 잘 짜인 편에 속합니다.
그 시절 오락실과 이 게임의 자리
1992년의 오락실은 격투 게임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던 때입니다. 캡콤 자신이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오락실의 좋은 자리는 대전 기판이 차지했습니다. 퀴즈 기판은 그 옆에서 조용한 손님을 받는 자리였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더 어려웠습니다. 영어로 된 문제를 읽어 가며 하는 게임이 성립하기 힘든 환경이었고, 실제로 국내 가게에서 이 기판을 만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내 통칭이 따로 붙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다시 잡아 보면 문제를 다 맞히기보다는, 격투 게임으로 유명한 회사가 이런 물건도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재미가 더 큽니다. 캡콤 특유의 깔끔한 도트 그림과 경쾌한 음악은 여기서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