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지구방위군
퀴즈 지구방위군 (Quiz Chikyu Bouei Gun Japan) · 1991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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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맞혀서 지구를 지킨다
오락실 퀴즈 게임들은 늘 한 가지 고민을 안고 있었습니다. 문제만 연달아 던지면 손님이 금세 지루해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작사들은 문제 풀이 위에 이런저런 옷을 입혔습니다. 타이토가 1991년에 내놓은 이 게임이 고른 옷은 특촬물과 SF였습니다. 제목의 지구방위군이라는 말 그대로, 지구를 노리는 위협에 맞서는 조직의 일원이 되어 문제를 푸는 구성입니다.
이 발상은 생각보다 잘 맞아떨어집니다. 4지선다에서 답을 하나 고르는 행위가 그 자체로는 밋밋하지만, 틀리면 지구가 위험해진다는 상황이 얹히면 손끝의 긴장이 달라집니다. 퀴즈 지구방위군(Quiz Chikyu Bouei Gun)은 그 옷 입히기를 꽤 성실하게 해낸 축에 듭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조작은 단순합니다. 화면에 문제와 선택지가 뜨고, 제한 시간 안에 레버나 버튼으로 하나를 고르면 됩니다. 맞히면 진행되고 틀리면 남은 여유가 깎입니다. 여유가 다 떨어지면 게임이 끝나고 동전을 더 넣으면 이어서 할 수 있습니다. 이 뼈대는 당시 일본산 퀴즈 기판 대부분이 공유하던 형태입니다.
다른 점은 문제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연출입니다. 상황이 벌어지고 위협이 다가오고, 그것을 문제 풀이로 막아내는 흐름이 화면으로 그려집니다. 순수하게 상식만 겨루는 기판보다 볼거리가 많고, 그래서 잘 몰라도 한 판을 구경하는 재미가 생깁니다.
초보자가 알아둘 요령은 시간 관리 하나입니다. 제한 시간이 짧아 문제를 다 읽고 고민할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모르는 문제를 오래 붙들면 시간 초과로 그냥 오답이 됩니다. 4지선다는 찍어도 네 번에 한 번은 맞지만 시간 초과에는 확률조차 없습니다. 모르겠다 싶으면 바로 찍고 넘어가는 편이 훨씬 오래 버팁니다.
일본어라는 벽
국내 이용자에게 진짜 장애물은 난이도가 아니라 언어입니다. 문제와 선택지가 전부 일본어이고, 소재도 그 시절 일본의 방송·연예·시사·상식에 크게 기대고 있습니다. 일본어를 읽을 수 있어도 당시 일본에서만 통하던 화제가 나오면 답을 고를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판은 한국 오락실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격투나 슈팅은 글자를 못 읽어도 손이 알아서 하지만, 퀴즈는 읽지 못하면 아무것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업주 입장에서도 손님이 붙지 않는 자리는 손해였습니다. 일본에서 이 장르가 한 시대를 이룰 만큼 쏟아졌는데도 국내에는 거의 흔적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동전이 아깝지도 않으니 화면을 천천히 뜯어보며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때는 할 수 없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셈입니다.
타이토와 퀴즈 기판의 전성기
타이토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오락실이라는 업태 자체를 만들어낸 회사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 사이에는 대형 히트작 한둘에 기대기보다 온갖 장르를 폭넓게 찍어내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퍼즐도 액션도 레이싱도 만들면서 그 틈틈이 퀴즈 기판을 여러 편 내놓았습니다.
제작사 입장에서 퀴즈 기판은 효율이 좋은 상품이었습니다. 복잡한 연산이나 화려한 기술이 필요 없고, 품의 대부분이 문제를 모으고 다듬는 데 들어갑니다. 이미 만들어둔 기판 위에 문제 묶음과 껍데기만 갈아 끼우면 새 게임 한 편이 나왔습니다. 이 시기 일본 오락실에 비슷한 구조의 퀴즈 게임이 놀랄 만큼 많이 깔려 있던 배경입니다.
다만 이 장르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문제를 한 번 다 본 손님에게는 두 번 넣을 이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액션 게임은 실력이 늘수록 더 깊이 들어가지만 퀴즈는 답을 외우면 거기서 끝납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이 장르가 빠르게 사라진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지금 이 게임을 보는 자리
결국 이 게임은 손맛으로 붙잡는 물건은 아닙니다. 대신 다른 걸 남깁니다. 1991년 일본 오락실 한구석에서 4지선다가 손님을 붙들기 위해 어떤 껍데기를 뒤집어썼는지가 화면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촬물의 문법을 퀴즈에 얹는다는 발상 자체가 그 시절 일본 오락실의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읽는다면 한 판 붙잡고 어디까지 버티는지 시험해볼 만합니다. 전혀 못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선택지 네 개 중 하나를 찍는 게임이니 운에 맡기고 연출만 구경해도 한 판은 굴러갑니다. 그 시절 오락실이 얼마나 다양한 물건으로 채워져 있었는지 확인하는 표본으로서 볼 가치가 있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