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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킹 오브 파이터즈

퀴즈 킹 오브 파이터즈 (Quiz King of Fighters Sam 080 Sah 080) · 1995 · Sau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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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대신 문제로 싸우는 킹 오브 파이터즈

1995년의 오락실에서 킹 오브 파이터즈라는 이름은 곧 격투 게임을 뜻했습니다. 그 이름을 달고 나온 기판에 앉았는데 화면에 커맨드가 아니라 사지선다 문제가 뜬다면, 처음 본 사람은 잠시 어리둥절했을 겁니다. 이 게임이 바로 그런 물건입니다. 익숙한 캐릭터들이 그대로 등장하지만, 승부를 가르는 것은 반응 속도나 커맨드 입력이 아니라 아는 것의 양입니다.

발상은 단순합니다. 격투 게임의 대전 구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안의 공격 수단만 퀴즈로 바꿔 놓았습니다. 문제를 맞히면 상대에게 타격이 들어가고, 틀리면 내가 맞습니다. 화면 위쪽의 체력 게이지가 오가는 모습은 격투 게임과 다르지 않아서, 옆에서 보는 사람도 지금 누가 이기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퀴즈 킹 오브 파이터즈 보드·카드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5)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퀴즈 킹 오브 파이터즈(Quiz King of Fighters)는 격투 게임의 외형을 쓴 퀴즈 대전 게임입니다. 조작은 보기를 고르는 것뿐이고, 레버로 선택지를 옮기거나 버튼을 눌러 답을 확정하는 정도로 끝납니다. 손가락 실력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한 판의 흐름은 격투 게임을 그대로 따릅니다. 캐릭터를 고르고, 상대와 마주 서고, 문제가 제시되고, 제한 시간 안에 답을 고릅니다. 맞히면 상대의 체력이 깎이고 틀리면 내 체력이 깎이며, 한쪽 체력이 다 떨어지면 그 판이 끝나고 다음 상대로 넘어갑니다. 혼자 하면 컴퓨터가 상대해 주고, 옆자리에 사람이 앉으면 그대로 대인전이 됩니다.

대인전이 이 게임의 본체에 가깝습니다. 같은 문제를 두 사람이 동시에 보고 누가 먼저 정확히 고르는가를 겨루는 구조라, 아는 문제가 나왔을 때의 통쾌함과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의 초조함이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집니다. 격투 게임의 대전 감각을 문답으로 옮겨 놓았다는 점에서 발상이 잘 맞아떨어진 편입니다.

퀴즈 킹 오브 파이터즈 보드·카드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5)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가장 큰 장벽은 언어입니다. 문제와 보기가 모두 일본어로 나오기 때문에, 읽지 못하면 사실상 네 개 중 하나를 찍는 게임이 됩니다. 게다가 문제의 상당수가 그 시절 일본의 만화, 방송, 연예, 생활 상식을 다루기 때문에 글자를 읽을 수 있어도 배경 지식이 없으면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요령이라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다 지나가면 오답과 마찬가지로 손해를 보므로, 모르겠으면 일단 아무거나 고르는 편이 언제나 낫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려 하지 말고, 보기 네 개 중 눈에 익은 단어가 있는지부터 보는 편이 시간을 아낍니다.

캐릭터를 고르는 것은 문제 난이도나 유불리보다는 취향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고르고 그 캐릭터가 이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런 캐릭터 외전물의 본래 재미입니다.

퀴즈 킹 오브 파이터즈 보드·카드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95)

네오지오라는 기판

이 게임이 돌아간 네오지오는 90년대 한국 오락실에서 가장 흔했던 기판 중 하나입니다. 기판 한 대에 카트리지만 바꿔 끼우면 다른 게임이 되는 구조라 가게 입장에서 부담이 적었고, 그래서 동네 오락실 구석에도 네오지오 한 대는 대개 있었습니다.

다만 실제로 꽂혀 있던 카트리지는 격투 게임과 슈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일본어 퀴즈물은 국내에서 성립하기 어려운 장르였기에, 같은 기판 위에서 돌아가는 게임이었어도 한국 오락실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름만 듣고 격투 게임인 줄 알았다가 실물을 본 사람도 드물었을 겁니다.

사우루스라는 회사

사우루스는 네오지오 기판용 게임을 여럿 낸 회사입니다. 대형 개발사가 아니라 이 기판 생태계 안에서 다양한 장르의 소규모 작품을 꾸준히 내던 곳에 가깝습니다. 그 시절 네오지오에는 이런 회사들이 여럿 붙어 있었고, 덕분에 격투 게임 일색으로 보이는 이 기판의 목록에도 의외로 다양한 물건이 섞여 있습니다.

인기 있는 격투 게임 브랜드를 다른 장르로 옮겨 보는 시도 자체는 그 시절에 흔했습니다. 캐릭터가 이미 사랑받고 있으면 개발비를 크게 들이지 않고도 손님을 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은 그런 시도 중에서도 원작의 대전 구도를 형태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격투 게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화면만 봐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