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클라이머 2
크레이지 클라이머 2 (Crazy Climber 2 Japan) · 1988 · Nichibutsu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레버가 두 개인 이유
오락실 기판 중에는 조작 장치를 보는 것만으로 무슨 게임인지 짐작되는 것이 있습니다. 크레이지 클라이머 계열이 딱 그렇습니다. 버튼은 없고 레버만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왼쪽 레버가 왼손, 오른쪽 레버가 오른손입니다. 두 손을 번갈아 위로 올리면 캐릭터가 창틀을 하나씩 잡고 벽을 기어오릅니다. 한쪽 손을 올린 상태에서 다른 손을 올려야 하고, 두 손을 동시에 떼면 떨어집니다. 게임의 조작이 곧 게임의 주제인 셈이라, 처음 앉은 사람도 십 초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차립니다.
크레이지 클라이머 2(Crazy Climber 2)는 1980년 첫 작으로 오락실에 강한 인상을 남긴 니치부츠가 여러 해 뒤에 내놓은 속편입니다. 목표는 전작과 같습니다. 고층 빌딩 벽면에 매달려 위로,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위에서는 방해가 쏟아지고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순한 규칙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종류의 게임입니다.
한 판이 어떻게 흘러가나
시작하면 캐릭터는 빌딩 아래쪽 벽에 붙어 있습니다. 두 레버를 번갈아 위로 밀어 창틀을 하나씩 잡아 나갑니다. 리듬이 붙으면 꽤 빠르게 올라가지만, 문제는 창문입니다. 창문은 열려 있기도 하고 닫혀 있기도 한데, 닫힌 창틀은 잡을 수 없습니다. 올라가는 도중에 창문이 닫히면 손을 옮길 자리가 사라지므로, 위쪽 창문 상태를 미리 보면서 좌우로 이동해 열린 줄을 골라 타야 합니다. 이 게임의 실제 판단은 거의 전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이 줄로 계속 갈 것인가, 옆줄로 옮길 것인가입니다.
방해는 위에서 옵니다. 창문에서 던지는 물건, 벽을 따라 내려오는 것들, 그리고 건물 구조 자체가 만드는 막다른 자리 같은 것들입니다. 대부분은 좌우로 한 칸 비켜서면 피할 수 있지만, 문제는 비키는 동안에도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 관리하면서 동시에 좌우 위치까지 잡아야 하니, 손가락이 꼬이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떨어지면 그대로 끝입니다. 다른 액션 게임처럼 맞고 무적 시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손을 놓치면 바닥까지 내려갑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긴장감은 위로 올라갈수록 커집니다. 아래에 쌓아 둔 시간이 길수록 한 번의 실수가 아깝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자리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은 조작 그 자체입니다. 머리로는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인데 손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요령은 두 손을 동시에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손을 올린 뒤 그 손은 잊고 다른 손만 신경 씁니다. 이걸 몇 판만 반복하면 리듬이 몸에 붙고, 그때부터는 손이 아니라 창문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 벽은 좌우 이동입니다. 레버를 옆으로 밀어 옆줄로 옮기는 동작은 위로 올라가는 동작보다 시간이 걸리므로, 위험이 눈앞에 온 뒤에 옮기려 하면 늦습니다. 화면에서 자기 캐릭터만 보지 말고 캐릭터 두어 층 위를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슈팅 게임에서 자기 기체가 아니라 탄이 나오는 자리를 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는 조급함입니다. 빨리 올라가면 점수 면에서 유리한 구조라 계속 서두르게 되는데, 창문이 닫히는 자리에서는 잠깐 멈춰 기다리는 것이 정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멈춰 있는 동안 위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리듬을 타는 판단이 붙으면 도달 높이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전작과 견주면
1980년의 첫 작은 오락실 초창기 게임 중에서도 조작 장치로 이름을 남긴 작품입니다. 그 시절에는 조이스틱과 버튼이라는 표준이 아직 굳어지기 전이라, 게임마다 전용 장치를 붙이는 일이 흔했습니다. 트랙볼, 다이얼, 두 개짜리 레버 같은 것들입니다. 크레이지 클라이머의 더블 레버는 그중에서도 아이디어와 조작감이 맞아떨어진 드문 예로 꼽힙니다.
속편은 그 감각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화면과 연출을 8년치 기술만큼 손봤습니다. 다만 그사이 오락실의 주류는 크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1988년이면 벨트스크롤 액션과 대전 격투가 자리를 잡아 가던 무렵이고, 손님들은 화려한 캐릭터와 협동 플레이에 눈이 가 있었습니다. 레버 두 개로 벽을 오르는 게임은 그 흐름 속에서 오히려 더 낯선 물건이 됐습니다. 이 속편이 전작만큼 널리 퍼지지 못한 데에는 그런 시대 사정이 있습니다.
니치부츠와 그 시절 오락실
니치부츠는 1970년대부터 오락실 기판을 만들어 온 일본 회사로, 초창기 아케이드의 여러 실험적인 게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크게 유행한 장르를 따라가기보다 조작이나 발상이 남다른 게임을 자주 냈고, 그런 성향이 크레이지 클라이머 같은 결과물로 남았습니다.
우리나라 오락실에서 이 계열을 직접 만져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전용 레버가 두 개 달린 기계는 일반 기판처럼 아무 캐비닛에나 꽂아 돌릴 수 없어서, 국내에 들어오더라도 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우리에게 오락실의 기억보다는 이야기로 먼저 알려진 편입니다. 지금 브라우저에서 키보드로 두 레버를 대신해 보면 실기의 손맛까지 그대로 오지는 않지만, 두 손을 번갈아 올려 한 층씩 벌어 나가는 그 구조가 왜 오래 회자되었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