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기어 랠리 (GBA)
톱 기어 랠리 (Top Gear Rally E Surplus) · 2003 · Ke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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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위의 랠리
랠리 게임의 매력은 포장도로를 벗어나는 데 있습니다. 반듯한 서킷에서는 정해진 선을 따라 정확히 도는 것이 전부지만, 흙길과 자갈길에서는 차가 미끄러지는 것을 전제로 운전해야 합니다. 코너 앞에서 차를 일부러 흘려 놓고 뒷바퀴로 방향을 잡는 감각, 그 불안정함이 랠리 게임의 본질입니다.
톱 기어 랠리는 그 감각을 휴대용 기기의 작은 화면에 담아낸 작품입니다. 거치형 기기에 비하면 화면도 작고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적지만, 그 한계 안에서 노면이 달라지면 차가 달라진다는 랠리의 핵심 한 가지는 확실하게 붙잡아 두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톱 기어 랠리(Top Gear Rally)는 차 뒤를 따라가는 시점으로 코스를 달리며 순위와 기록을 다투는 레이싱 게임입니다. 톱 기어라는 이름은 1990년대부터 여러 기기에서 이어져 온 레이싱 시리즈의 간판이고, 그 갈래 가운데 비포장 코스를 주로 다루는 쪽이 랠리를 붙인 작품들입니다.
조작은 방향키로 좌우를 잡고 버튼으로 가속과 제동을 하는 단순한 구성입니다. 배울 것 자체는 몇 분이면 끝납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이 게임은 액셀을 끝까지 밟고 있으면 코너에서 반드시 밖으로 밀려납니다. 언제 발을 떼고 언제 다시 밟을지를 몸에 익히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너를 도는 법
처음 하시는 분이 가장 먼저 겪는 벽은 코너마다 벽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원인은 대체로 하나입니다. 코너에 들어간 뒤에 속도를 줄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레이싱 게임의 기본은 코너 앞에서 미리 감속하고, 코너 안에서는 다시 밟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줄이고 나오면서 밟는다는 순서만 지켜도 기록이 눈에 띄게 좋아집니다.
두 번째는 시선입니다. 화면이 작은 휴대기기에서는 차 바로 앞만 보게 되기 쉬운데, 그러면 코너가 보이는 순간 이미 늦습니다. 화면 위쪽 끝, 길이 사라지는 자리를 보고 있어야 다음 코너를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노면 구분입니다. 같은 속도로 들어가도 포장도로에서는 붙고 흙길에서는 미끄러집니다. 코스를 몇 번 돌면 어느 구간이 잘 미끄러지는지 알게 되는데, 그 구간에서 한 박자 일찍 감속하는 것만으로 완주율이 크게 올라갑니다.
코스를 외우는 게임
레이싱 게임은 결국 코스 암기 게임입니다. 처음 달리는 코스에서는 누구도 좋은 기록을 낼 수 없습니다. 다음에 무엇이 오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코스를 몇 번 돌면서 코너의 순서와 각도를 외우고 나면, 화면을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대로 미리 움직이게 됩니다. 그 단계에 들어서는 순간 기록이 한 번에 뚝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을 즐기는 요령은 여러 코스를 조금씩 해 보는 것보다 한 코스를 반복해서 파는 쪽입니다. 한 코스라도 끝까지 외워 놓으면 다른 코스를 배울 때 필요한 감각도 함께 자랍니다. 처음 몇 번은 완주만 목표로 삼고, 익숙해진 뒤에 기록을 줄이는 순서로 가시면 훨씬 덜 지칩니다.
휴대기기 레이싱의 자리
휴대용 기기로 레이싱을 만드는 일은 늘 타협의 연속이었습니다. 화면이 작아 멀리 볼 수 없고, 처리할 수 있는 그림의 양이 제한되어 있어 시야가 짧아집니다. 그런 조건에서는 사실적인 주행보다 코스를 외워 정확히 도는 재미 쪽으로 무게를 옮기는 편이 낫고, 이 계열의 작품들은 대체로 그 선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해 보면 오히려 담백합니다. 복잡한 설정이나 긴 진행 없이, 시작하면 바로 달리고 한 판이 몇 분 안에 끝납니다. 기록을 조금씩 줄여 가는 재미만으로 굴러가는 구조여서 잠깐 짬이 날 때 꺼내 들기에 알맞습니다.
랠리 게임을 처음 접하시는 분께도 권할 만합니다. 차가 미끄러진다는 것이 결함이 아니라 이 장르의 규칙이라는 사실을 몇 판 안에 이해하게 되실 것이고, 그 순간부터 이 게임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