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키즈
파일럿 키즈 (Pilot Kids Model 2b Revision a) · 1998 · Psi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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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막의 명가가 만든 귀여운 비행기
사이쿄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개 화면을 가득 메우는 탄막과 이를 악물게 만드는 난이도를 먼저 떠올립니다. 전국 시리즈와 건버드로 대표되는 이 회사의 2D 슈팅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일어서기가 몹시 어려운, 인정사정없는 물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1998년에 나온 이 게임은 그 인상과 사뭇 다릅니다.
파일럿 키즈(Pilot Kids)는 3D 기판 위에서 돌아가는 비행 슈팅이고, 화면에 나오는 것들이 하나같이 둥글둥글합니다. 무섭기보다는 아기자기하고, 혼자 이를 갈며 파고들기보다 둘이 붙어서 웃으며 하기에 어울리는 모양새입니다. 늘 하던 것과 다른 자리에 서 보려던 시도가 이런 물건을 만들어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날며 적을 쏘아 떨어뜨리는 게임입니다. 2D 슈팅처럼 화면이 정해진 방향으로만 흐르는 대신, 3D 공간 안에서 기체를 움직입니다. 레버로 기수를 돌리고 버튼으로 쏘는 것이 조작의 전부라 배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한 판의 흐름은 명료합니다. 정해진 구간에서 나타나는 적들을 처리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목표를 챙기고, 구간 끝에서 덩치 큰 상대를 만납니다. 이 뼈대 자체는 슈팅 게임의 오래된 공식이지만, 무대가 입체이다 보니 적이 어디서 오는지 파악하는 감각이 2D와 전혀 다릅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점도 이 게임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사이쿄의 2D 슈팅에서 둘이 붙는다는 것은 대개 서로 다른 탄막을 각자 견디는 일이었지만, 여기서는 훨씬 여유가 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헤매는 지점
2D 슈팅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처음에 오히려 더 헤맵니다. 평면 슈팅에서는 총알과 내 기체의 거리가 화면상에서 그대로 보이지만, 입체 화면에서는 멀리 있는 것과 곧 닿을 것을 눈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 물체에 부딪히거나, 반대로 이미 지나간 것을 피하려다 자세가 무너지는 일이 초반에 자주 생깁니다.
요령은 화면 한가운데만 보지 않는 것입니다. 3D 슈팅에서는 조준선 주변보다 화면 가장자리에서 새로 밀려 들어오는 것들이 더 위험합니다. 시야를 넓게 두고 다음에 무엇이 들어올지를 보는 습관이 붙으면 체감 난이도가 눈에 띄게 내려갑니다.
또 하나는 무리하게 다 잡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입체 공간에서는 하나를 쫓아가느라 자세를 크게 틀면 그동안 다른 방향이 완전히 비어버립니다. 놓치는 적을 감수하고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는 쪽이 결과적으로 더 멀리 갑니다.
3D 기판 시대의 한 자리
1998년은 오락실이 3D로 완전히 넘어간 뒤였습니다. 세가의 3D 기판들이 격투와 레이싱을 새로 정의하면서, 그때까지 2D로 먹고살던 회사들도 하나둘 입체 화면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이쿄가 자기 전문 분야인 슈팅을 들고 3D 기판에 올라탄 것도 그런 흐름 위에서 나온 선택입니다.
다만 결과가 늘 좋지는 않았습니다. 2D 슈팅에서 갈고닦은 것들 가운데 상당수는 입체로 옮기면 그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탄막을 촘촘히 깐다는 발상 자체가 3D에서는 성립하기 어렵고, 시각적으로도 위압감이 잘 살지 않습니다. 이 시기 3D 슈팅들이 2D 걸작들만큼의 이름값을 남기지 못한 배경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게임의 선택은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어려움으로 승부하는 대신 밝고 접근하기 쉬운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니, 3D의 약점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물건
한국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만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90년대 후반 국내 오락실의 자리는 대전 격투와 리듬 게임, 그리고 큰 화면을 단 레이싱 기계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3D 기판은 값이 비싸서 업주가 들여놓을 때 확실히 손님이 붙을 물건을 골랐고, 이런 아기자기한 비행 슈팅은 그 목록에 잘 오르지 못했습니다.
지금 브라우저에서 켜면 그때 지나쳤던 물건을 부담 없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사이쿄라는 이름에서 기대하는 살벌함은 없지만, 그 회사가 자기 색깔에서 벗어나 무엇을 해보려 했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90년대 말 오락실이 3D라는 새 도구를 어떻게 만져보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표본으로서 한 번쯤 볼 만한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