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SOS
피버 SOS (Fever Sos International Ver 980925) · 1998 ·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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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지옥 슈팅에 디스코를 붙였다는 말을 들으면 대개 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입니다. 화면 가득 총알이 날아오는 와중에 배경에서는 미러볼이 돌고, 스피커에서는 쉬지 않고 디스코 비트가 흐르며, 격추한 적 기체에서는 사람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그 사람들을 주워 담으면 기체 뒤로 줄줄이 매달려서 함께 춤을 춥니다. 이걸 만든 사람들이 진심이었다는 게 플레이 5분이면 전해집니다.
피버 SOS(Fever SOS)는 1998년에 나온 종스크롤 슈팅 게임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화면을 따라 자기 기체를 조종하면서 적을 격추하고 총알을 피하는, 이른바 탄막 슈팅입니다. 일본 내수판은 단군 페브론이라는 제목으로 나왔고, 해외 기판이 피버 SOS라는 이름을 달았습니다. 같은 게임이지만 난이도와 세부 조정이 조금 달라서 두 판본을 구분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을 줍는 슈팅
이 게임의 핵심은 격추가 아니라 회수입니다. 적을 부수면 작은 사람 모양 오브젝트가 튀어나오는데, 이걸 기체로 스쳐 지나가면 뒤에 꼬리처럼 달라붙습니다. 많이 달수록 점수 배율이 올라가고, 일정 수를 넘기면 화면 연출이 요란해집니다. 반대로 피격당하면 매달려 있던 사람들이 흩어져 사라집니다. 목숨 하나를 잃는 것보다 쌓아 둔 행렬을 통째로 날리는 쪽이 더 아깝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플레이 방향이 다른 슈팅과 달라집니다. 보통 탄막 슈팅은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고 점수는 그다음인데, 이 게임은 점수를 올리려면 일부러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떨어지는 사람들은 대개 적이 많은 지점, 즉 총알이 가장 두꺼운 지점에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화면 아래쪽에 붙어서 얌전히 클리어만 하면 점수판에 이름을 올릴 수 없습니다.
초보자에게 권하는 순서는 명확합니다. 처음 몇 판은 회수를 완전히 잊고 피하는 것만 연습하시는 게 좋습니다. 탄막 슈팅은 기체 전체가 아니라 중심의 아주 작은 점만 판정에 쓰이는데, 이 감각이 몸에 붙기 전에는 안 맞아도 될 총알에 맞습니다. 총알 사이가 넓어 보이면 실제로는 훨씬 더 넓다고 생각하시고, 큰 동작 대신 조금씩 밀어 넣는 식으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기체와 샷을 고르는 재미
시작할 때 기체와 공격 방식, 그리고 이동 속도를 고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조합이 플레이 감각을 꽤 크게 바꿉니다. 앞으로 곧게 뻗는 집중형 샷은 화력이 세지만 좌우로 새는 적을 처리하기 어렵고, 넓게 퍼지는 쪽은 화면 정리는 편한 대신 보스에게 시간이 걸립니다. 회수를 노린다면 옆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빨리 훑을 수 있는 기동성이 중요해지고, 안정적인 클리어를 노린다면 앞을 빨리 뚫는 화력이 중요해집니다.
이동 속도 선택도 그냥 넘기시면 안 됩니다. 빠른 쪽은 회수에 유리하지만 촘촘한 탄막 사이를 지날 때 손이 미끄러져 그대로 총알에 들이받습니다. 느린 쪽은 정밀하게 피하기 좋은데 사람을 주우러 갈 시간이 모자랍니다. 자기가 어느 쪽 플레이를 할지 먼저 정하고 속도를 고르시는 편이 낫습니다.
케이브라는 회사와 그 시절 탄막
케이브는 1990년대 중반부터 탄막 슈팅이라는 장르를 사실상 규격화한 회사입니다. 느리고 촘촘한 총알, 아주 작은 피격 판정, 화면을 뒤덮는 물량을 감당하기 위한 슬로다운까지, 지금 우리가 탄막 슈팅이라고 부르는 요소 대부분이 이 시기 이 회사 작품들에서 정리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그 흐름 한가운데에서 나왔습니다.
다만 방향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같은 회사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로 무겁고 진지한 SF 분위기를 밀고 갔다면, 이 게임은 정반대로 갔습니다. 디스코라는 소재는 개발 도중 방향을 크게 튼 결과로 알려져 있는데, 덕분에 기체가 총알에 둘러싸여 있는 살벌한 화면과 신나는 배경음이 계속 부딪힙니다. 이 부조화가 오히려 이 게임의 인장이 되었습니다.
오락실에서의 자리
이 게임은 국내 오락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탄막 슈팅 자체가 소수 취향으로 굳어 가던 시기였고,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유통 규모가 크지 않았습니다. 슈팅 기판을 여러 대 두는 오락실이나, 마니아층이 모이던 몇몇 가게에서나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대신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게임이었습니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저게 대체 무슨 게임이냐고 묻게 만드는 화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처음 잡으시는 분이라면 점수를 신경 쓰지 마시고 일단 끝까지 가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죽지 않고 넘어가는 데 익숙해진 다음에 사람을 줍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이 게임이 왜 이렇게 설계되었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