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 월드
GP 월드 (Gp World) · 1985 · Sega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오락실에 레이저디스크를 쓰는 기계가 들어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촬영한 영상을 배경으로 틀어놓고 그 위에 게임 캐릭터를 겹쳐 보여주는 방식이었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화면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세가가 실제 서킷을 촬영해 만든 레이싱 기계도 그중 하나였고, 이 MSX판은 그 이름을 가정용 컴퓨터로 가져온 물건입니다. 8비트 컴퓨터에 실사 영상이 들어갈 리는 없으니, 남은 것은 게임의 뼈대뿐이었습니다.
GP 월드(GP World)는 F1 스타일의 오픈휠 머신을 몰고 서킷을 도는 레이싱 게임입니다. 화면은 자기 차 뒤를 따라가는 시점이고, 앞에서 다가오는 다른 차들을 피해가며 정해진 시간 안에 구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코스를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체크포인트를 제때 통과해 시간을 늘려가는, 그 시절 레이싱 게임의 전형적인 구조를 따릅니다.
한 판의 흐름
시작하면 차가 출발선에서 달려나갑니다. 조작은 좌우로 차선을 옮기고 가속과 감속을 조절하는 것이 거의 전부이고, 기어를 저단과 고단으로 바꾸는 조작이 붙어 있습니다. 직선에서는 고단으로 최고 속도를 뽑고, 코너가 다가오면 저단으로 내리면서 속도를 줄이는 것이 기본입니다.
앞차를 추월하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 동작입니다. 같은 차선에 있는 차를 그대로 받으면 스핀하거나 폭발하고, 그 사이 시간이 계속 흐르기 때문에 사고 한 번이 곧바로 시간 부족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무작정 빠르게 가는 것보다 앞을 미리 보고 빈 차선으로 옮겨두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빠릅니다.
코스 곳곳에는 체크포인트가 있고 통과할 때마다 남은 시간이 늘어납니다. 시간을 다 쓰면 그 자리에서 끝나므로, 사실상 상대는 다른 차가 아니라 시계입니다. 이 구조 덕분에 순위를 다투는 요즘 레이싱 게임과는 긴장의 종류가 다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가장 흔한 실수는 계속 최고 속도로 달리는 것입니다. 화면 앞쪽이 짧게 보이기 때문에 속도를 올려두면 차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에는 이미 피할 수 없습니다. 코너 진입 직전과 앞차가 몰려 있는 구간에서는 미리 속도를 줄여두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차선 변경 타이밍입니다. 피하려고 옆으로 옮겼는데 그 차선에도 차가 있어서 그대로 받는 경우가 자주 나옵니다. 옮기기 전에 목적지 차선이 비어 있는지 한 박자 먼저 확인하는 것, 그리고 한 번에 여러 차선을 가로지르지 않는 것이 요령입니다.
세 번째는 코너입니다. 커브 구간에서는 차가 바깥쪽으로 밀리기 때문에 직선과 같은 감각으로 조작하면 코스를 벗어납니다. 커브가 시작되기 전에 안쪽 차선으로 붙여두고 감속해서 들어가면 훨씬 안정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8비트로 옮겨진 대작
원작 기계는 실사 영상이라는 장치로 승부했지만, MSX 같은 8비트 컴퓨터에는 그런 것을 구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용판은 도로와 배경을 스프라이트와 문자 패턴으로 다시 그렸고, 대신 원작에는 없던 요소를 넣어 부피를 채웠습니다. 코스를 직접 만들어 저장하는 편집 기능이 대표적인데, 게임을 다 돌고 나서도 손으로 코스를 짜서 다시 달릴 수 있게 한 배려였습니다.
당시 가정용 이식이란 대체로 이런 식이었습니다. 오락실의 그 화면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고, 남는 것은 조작감과 구조뿐이었습니다. 그것을 얼마나 잘 살렸는지가 이식판의 평가를 갈랐고, 이 작품은 레이싱의 뼈대를 무리 없이 옮겨놓은 축에 듭니다.
그 시절 MSX 레이싱
MSX에는 레이싱 게임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시키는 것 자체가 이 기종에는 부담이었기 때문에, 도로를 표현하는 방식마다 회사별로 요령이 달랐습니다. 어떤 게임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도망쳤고, 어떤 게임은 이 작품처럼 뒤에서 따라가는 시점을 택하고 도로 폭을 단계적으로 바꿔 원근을 흉내 냈습니다.
국내에서 MSX는 학습용 컴퓨터라는 이름을 달고 팔렸지만 실제로는 게임기로 쓰인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문방구와 컴퓨터 상가에서 복사된 테이프와 카트리지가 돌았고, 그 목록에는 이런 이식작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오락실의 화려한 기계를 볼 수 없던 사람에게는 이런 8비트판이 그 게임의 전부였고, 그래서 지금 다시 돌려보면 화면은 소박해도 당시의 기대감이 함께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