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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런 MSX

아웃런 (Outrun) · 1987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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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의 그 커다란 기계를 집으로

1986년 오락실에 놓인 아웃런은 좌석에 앉아 진짜 핸들을 잡는 커다란 기계였습니다. 몸이 통째로 기울어지는 가동형 기체까지 있어서, 그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구경거리였죠. 동전을 넣지 못하는 아이들도 남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려고 기계 뒤에 줄을 서 있곤 했습니다. 그런 기계를 8비트 가정용 컴퓨터에 욱여넣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왔습니다. 당시 MSX를 갖고 있던 사람들은 이 카트리지를 꽂으며 두근거렸고, 화면에 야자수와 파란 하늘이 뜨는 순간 그 기대가 완전히 헛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오락실판과 나란히 놓으면 초라합니다. 도로가 부드럽게 휘어지지 않고 뚝뚝 끊기며, 배경은 대폭 간소해졌고, 화면이 넘어가는 속도도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이식판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흐릿하게나마 그 오프닝의 풍경과 흘러나오는 곡이 확실히 아웃런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능이 모자란 기계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지 골라낸 흔적이, 지금 다시 보면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아웃런 MSX 레이싱 게임 화면 1 - MSX (1987)

어떤 게임인가

아웃런(Outrun)은 빨간 오픈카를 몰고 정해진 시간 안에 다음 체크포인트까지 달리는 드라이브 게임입니다. 상대 차와 순위를 다투는 경주가 아니라, 줄어드는 제한 시간과 싸우는 구조입니다. 체크포인트를 통과할 때마다 시간이 조금씩 보태지고, 통과하기 전에 시간이 0이 되면 그 자리에서 게임이 끝납니다.

앞을 막는 것은 상대 선수가 아니라 도로를 느긋하게 달리는 일반 차량들입니다. 이 차들은 나를 방해하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 속도로 굴러가는데, 그래서 오히려 예측이 어렵습니다. 갑자기 차선을 바꾸는 차 뒤에 붙어 있다가 그대로 들이받는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조작은 단순합니다. 좌우로 방향을 잡고, 가속과 감속을 쓰고, 기어를 낮은 단과 높은 단 사이에서 바꿉니다. 저단 기어는 코너에서 자세를 잡을 때, 고단 기어는 직선에서 속도를 뽑을 때 씁니다. 이 두 개를 언제 바꾸느냐가 사실상 이 게임 실력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웃런 MSX 레이싱 게임 화면 2 - MSX (1987)

갈림길이라는 발명

아웃런이 다른 드라이브 게임과 갈리는 지점은 갈림길입니다. 한 구간을 끝내면 도로가 두 갈래로 나뉘고, 어느 쪽으로 핸들을 꺾느냐에 따라 다음 무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밀밭을 지나기도 하고, 바위 협곡을 통과하기도 하고, 폐허 사이를 달리기도 합니다. 갈림길 앞에서 어느 쪽을 고를지 0.5초 안에 정해야 하는 그 긴장감이 이 게임의 독특한 맛입니다.

이 구조 덕분에 한 판을 끝내도 본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도착 지점이 여러 개라서, 다른 쪽 길로만 골라 가면 처음 보는 풍경이 계속 나옵니다. 짧은 게임인데도 여러 번 다시 하게 만드는 힘이 여기서 나옵니다. 왼쪽만 계속 고르는 길, 오른쪽만 계속 고르는 길, 그리고 그 사이를 섞는 길이 각각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MSX판에서도 이 분기 구조는 그대로 살렸습니다. 그래픽은 깎였지만 게임의 뼈대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판단이었고, 결과적으로 이 이식판을 그냥 축소판이 아니라 아웃런으로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이 선택입니다.

처음 하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패는 코너에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들어가는 것입니다. 화면이 좁고 시야가 짧아서, 굽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이미 늦습니다. 도로 옆 표지와 배경이 흐르는 방향을 보고 미리 감속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코너 직전에 기어를 내리고 안쪽 차선을 미리 잡아 두면 훨씬 안정적으로 빠져나갑니다.

다른 차와 부딪히는 것도 크게 손해입니다. 가볍게 스치기만 해도 속도가 뚝 떨어지고, 크게 박으면 차가 튕겨 나가면서 몇 초를 통째로 잃습니다. 이 게임에서 몇 초는 체크포인트를 넘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시간입니다. 앞차가 보이면 붙었다가 옆으로 빠지는 것보다, 멀리서부터 비어 있는 차선을 골라 들어가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기어 조작을 아예 쓰지 않고 고단으로만 달리는 사람도 많은데, 초반 두어 구간은 그렇게도 넘어갑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코너가 급해지고 차량이 빽빽해져서, 저단으로 자세를 잡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벽이 옵니다.

MSX 세대에게 남은 것

이 이식판이 나온 시기에 국내에서 MSX는 컴퓨터 학원과 문방구를 통해 아이들 손에 닿던 기계였습니다. 오락실 요금을 아껴야 하던 시절에, 집에서 아웃런 비슷한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카트리지를 빌려 돌려 보는 일이 흔했습니다. 친구 집에 모여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잡고, 누가 어느 골인 지점까지 가 봤는지를 자랑하는 식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기술적 한계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제한된 성능 안에서 무엇을 남길지 골라낸 결과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만든 쪽은 화려한 배경 대신 분기 구조와 곡, 그리고 달리는 느낌 자체를 지키기로 했고, 그 판단은 지금 봐도 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