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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 루시

드라마틱 어드벤처 퀴즈 키스 & 루시 (Dramatic Adventure Quiz Keith Lucy Japan) · 1993 · V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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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게임인데 제목에 '드라마틱 어드벤처'가 먼저 붙어 있습니다. 순서가 뒤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이 게임을 실제로 해 보면 그 순서가 맞다는 걸 알게 됩니다. 문제를 맞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야기를 앞으로 밀고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문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초 일본 오락실에는 이런 식으로 퀴즈에 서사를 입힌 기판이 여럿 있었고, 이 게임은 그 흐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작품입니다.

키스 & 루시(Dramatic Adventure Quiz Keith & Lucy)는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운 일본어 퀴즈 게임입니다. 화면 위쪽에 상황과 문제가 제시되고, 아래쪽에 선택지가 늘어섭니다. 플레이어는 버튼으로 답을 고르고, 맞히면 이야기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틀리면 남은 기회가 깎입니다. 조작이라고 할 만한 것은 버튼 몇 개가 전부이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이 장르의 핵심입니다.

키스 & 루시 보드·카드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3)

한 판이 흘러가는 방식

퀴즈 게임의 한 판은 대개 정해진 수의 문제 세트로 나뉩니다. 세트 하나를 통과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단계가 올라갈수록 문제의 난도와 제한 시간의 압박이 함께 올라갑니다. 이 게임도 그 구조를 따르되, 각 구간 사이에 이야기 장면을 끼워 넣어 단순한 문제 나열로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핵심은 제한 시간입니다. 문제가 뜨는 순간부터 게이지가 줄어들고, 게이지가 다 닳으면 답을 고르지 않은 것으로 처리됩니다. 그래서 모르는 문제라도 일단 아무거나 찍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가만히 있다가 시간을 넘기면 확실히 틀리지만, 찍으면 확률이라도 남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을 오래 붙잡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첫 번째 요령이 그것입니다.

두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것도 이 장르의 재미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분야가 있어도, 옆 사람이 아는 분야가 다르면 서로 메워 줄 수 있습니다. 오락실에서 퀴즈 기판 앞에 두세 명이 붙어 앉아 훈수를 두던 풍경은 이 시절 특유의 것입니다.

키스 & 루시 보드·카드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3)

문제의 벽, 일본어

이 게임을 한국에서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언어입니다. 문제와 선택지가 모두 일본어로 나오기 때문에, 일본어를 읽지 못하면 사실상 무엇을 묻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액션 게임이라면 화면만 보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짐작이 되지만, 퀴즈 게임은 글을 읽는 것 자체가 게임의 전부입니다.

여기에 더해 문제의 상당수가 일본의 시사, 방송, 연예, 지리, 역사에서 나옵니다. 일본어를 읽을 줄 알아도 그 나라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판은 일본 현지에서는 꾸준히 돌아갔지만 바다 건너에서는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요즘 이런 게임을 다시 해 보는 재미는 거기에 있습니다. 1993년의 일본 사람들이 무엇을 상식이라고 여겼는지가 문제 하나하나에 박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답률과 상관없이 화면을 넘겨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공기가 느껴집니다.

만든 곳과 그 시절

비스코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아케이드 기판을 꾸준히 내놓은 일본의 중소 개발사입니다. 대형 제작사들처럼 간판 시리즈를 앞세우지는 못했지만, 퀴즈나 액션 같은 여러 장르를 오가며 알차게 만든 기판들을 남겼습니다. 이 게임도 그런 결과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1990년대 초는 일본 오락실에서 퀴즈 게임이 가장 붐볐던 시기입니다. 대전 격투가 오락실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격투에 지친 손님들이 잠깐 앉았다 가는 자리로 퀴즈 기판이 놓이곤 했습니다. 문제 데이터만 갈아 끼우면 새 게임처럼 보인다는 점도 제작사 입장에서는 매력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이 시기 퀴즈 게임은 화려한 스프라이트 처리보다 문자를 얼마나 깔끔하게 뿌리느냐가 중요했습니다. 문제 하나를 화면에 띄우는 데도 폰트와 레이아웃을 잘 짜야 읽기 편했고, 이 게임은 인물 그림을 함께 배치해 밋밋해지지 않게 신경 쓴 편입니다.

지금 해 볼 만한 이유

퀴즈 게임은 실력이 쌓이는 장르가 아닙니다. 조작을 연습해서 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아는 만큼만 나아갑니다. 그래서 처음 잡으면 오히려 부담이 없습니다. 잘하려고 애쓸 것 없이 아는 문제가 나오면 반갑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웃어넘기면 됩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일본어 퀴즈 기판을 실제로 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언어 장벽 때문에 수입 자체가 드물었고,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은 그때 놓친 것을 지금 뒤늦게 구경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답을 다 맞히겠다는 마음보다는, 1993년 일본 오락실 한 구석에 놓여 있던 화면을 들여다본다는 마음으로 앉으면 충분히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