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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플래닛

매드 플래닛 (Mad Planets) · 1983 · Gottli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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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기계 앞에 앉았는데 조이스틱 옆에 동그란 손잡이가 하나 더 달려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슨 게임인지 궁금해집니다. 매드 플래닛이 그런 기계였습니다. 왼손으로는 조이스틱을 잡아 우주선을 움직이고, 오른손으로는 손잡이를 돌려 우주선이 바라보는 방향을 따로 조절합니다. 움직이는 방향과 쏘는 방향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1983년에 이런 조작을 요구하는 게임은 흔치 않았습니다.

매드 플래닛(Mad Planets)은 고틀립이 1983년에 내놓은 전방향 슈팅 게임입니다. 별이 흩뿌려진 우주 공간에서 우주선 한 대를 몰고, 화면에 나타나는 행성들을 파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조이스틱으로 이동하고, 회전 손잡이로 기수를 돌리고, 스틱에 달린 방아쇠로 발사합니다. 손이 하는 일이 셋으로 나뉘어 있어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머리가 꽤 바쁩니다.

매드 플래닛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3)

행성은 자란다

이 게임의 규칙은 시간과 얽혀 있습니다. 판이 시작되면 행성들이 나타나는데, 이것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다 자란 행성은 주위에 위성을 만들어 냅니다. 위성은 행성 주위를 돌면서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위성이 붙은 행성은 직접 때릴 수가 없습니다. 위성부터 하나씩 떼어 내야 합니다.

여기서 첫 번째 판단이 나옵니다. 행성이 다 자라기 전에 부수면 큰 보너스가 붙습니다. 한 판의 행성을 전부 미성숙 상태에서 정리하면 상당한 점수를 챙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점수를 노리는 사람은 판이 시작하자마자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반대로 안전하게 가려는 사람은 천천히 하나씩 처리하는데, 그러는 사이 다른 행성들이 다 자라 버려서 결국 더 어려운 상황을 맞습니다. 서두르는 것이 실은 안전한 길이라는 역설이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위성을 모두 떼어 낸 행성은 그냥 죽지 않습니다. 성이 나서 플레이어를 향해 돌진해 옵니다. 그것도 점점 속도를 올리면서 말입니다. 제목에 붙은 미친 행성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이 상태가 되면 빠르게 마무리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피하려고 도망 다니면 계속 가속하며 따라붙어서 결국 잡힙니다.

매드 플래닛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3)

손잡이를 다루는 감각

이 게임을 처음 잡은 사람이 가장 크게 헤매는 부분이 조작입니다. 보통의 슈팅에서는 진행 방향과 사격 방향이 같습니다. 몸을 돌리면 총구도 같이 돌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왼쪽으로 도망치면서 오른쪽 뒤를 향해 쏘는 것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야 살아남습니다.

이 감각에 익숙해지는 요령은 두 손을 따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왼손은 오직 안전한 자리를 찾는 데만 쓰고, 오른손은 표적을 따라가는 데만 씁니다. 처음에는 둘이 뒤엉켜서 엉뚱한 방향으로 쏘게 되지만, 몇 판 지나면 손이 알아서 나뉩니다. 이런 조작을 요구하는 게임들이 다 그렇듯, 넘어서고 나면 다른 게임에서 얻기 힘든 자유로움이 생깁니다. 어디로든 도망치면서 어디로든 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강력한 능력입니다.

매드 플래닛 슈팅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83)

우주 비행사와 보너스 스테이지

화면에는 우주 비행사들이 갈피 없이 떠다닙니다. 이들을 수거하면 점수가 붙습니다. 행성을 상대하는 와중에 이들까지 챙기려면 동선이 복잡해지는데, 점수를 올리려면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위험한 자리에 떠 있는 비행사를 먹으러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매 순간 고민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몇 판마다 보너스 스테이지가 끼어듭니다. 처음에는 세 판마다 나오다가, 열두 판을 넘기면 네 판마다 나오는 식으로 간격이 벌어집니다. 보너스 스테이지에서는 떠다니는 우주 비행사들을 모으면서 혜성을 피합니다. 혜성은 궤도를 돌면서 계속 가속하고, 화면을 떠나기 전까지 점수 가치가 조금씩 올라갑니다. 오래 살려 두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잡으면 최대치를 챙길 수 있어서, 여기서도 욕심과 안전 사이의 계산이 이어집니다.

고틀립이라는 회사

고틀립은 원래 핀볼 기계를 만들던 시카고의 오래된 회사입니다. 1927년에 세워졌으니 비디오 게임보다 훨씬 앞선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1970년대에 대형 영화사에 인수되면서 자본이 들어왔고, 그 힘으로 비디오 게임 쪽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이 회사가 1982년에 내놓은 큐버트가 크게 성공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매드 플래닛은 그 여세를 이어 나온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게임을 설계하고 프로그래밍한 사람은 야부모토 칸이라는 개발자이고, 그림은 큐버트의 캐릭터를 그린 제프 리가 맡았습니다. 큐버트의 그 동글동글한 감각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게임의 행성과 위성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고틀립의 비디오 게임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83년에 회사 이름이 바뀌었고, 그 이듬해에는 비디오 게임 부문 자체가 문을 닫았습니다. 북미 게임 시장이 크게 무너지던 시기와 정확히 겹칩니다. 핀볼 자산은 다른 곳으로 넘어가 명맥을 이었지만,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을 만드는 고틀립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생산 대수도 많지 않아서, 매드 플래닛은 그 시절 북미 오락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기계는 아니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만난 사람은 더욱 드물 것입니다. 1983년 북미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진 기계였고, 특수한 조작 장치가 달려 있어 국내에 들어오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시 해 보는 것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처음 해 보는 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