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KSILGAME

몬스터 슬라이더

몬스터 슬라이더 (Monster Slider Japan) · 1997 · Visco

방향버튼ASZX보조QERT동전Shift시작Enter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낙하 퍼즐에서 바닥은 늘 평평했습니다. 블록은 떨어진 자리에 그대로 멈추고, 밑이 비면 그 위에 쌓인 것만 곧게 내려앉습니다. 몬스터 슬라이더는 그 전제를 흔듭니다. 이 게임의 바닥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고, 놓인 블록들은 낮은 쪽으로 주르륵 미끄러져 빈틈을 메웁니다. 더 재밌는 것은 그 기울기를 플레이어가 언제든 반대로 뒤집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방금까지 왼쪽에 몰려 있던 블록 더미가 버튼 하나에 오른쪽으로 쏟아집니다.

몬스터 슬라이더(Monster Slider)는 비스코가 1997년에 내놓은 낙하형 퍼즐 게임입니다. 색깔 블록이 두 개씩 짝지어 떨어지고, 같은 색 셋 이상이 맞닿으면 사라집니다. 뿌요뿌요나 컬럼스를 해 본 사람이라면 기본 규칙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이 게임의 전부는 앞서 말한 기울기, 그리고 그 기울기가 만들어 내는 예측 불가능한 연쇄에 있습니다.

몬스터 슬라이더 퍼즐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7)

기울기를 다루는 법

블록이 미끄러진다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합니다. 하나는 필드에 구멍이 잘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낙하 퍼즐에서 실력 없는 플레이어의 필드는 구멍투성이가 되고, 그 구멍이 결국 목을 조릅니다. 여기서는 블록이 알아서 낮은 쪽으로 흘러 채우니 필드가 비교적 고르게 유지됩니다. 초보자에게는 친절한 설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만든 배치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들여 쌓아 둔 모양이 기울기를 뒤집는 순간 전부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실력은 쌓는 능력이 아니라 흐르게 하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어디에 무엇을 떨어뜨릴지보다, 지금 기울기를 뒤집으면 필드가 어떤 모양으로 다시 정렬될지를 상상하는 쪽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강력한 수가 나옵니다. 같은 색을 필드 이곳저곳에 흩어 놓은 상태에서 기울기를 뒤집으면, 흩어져 있던 것들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한꺼번에 맞닿습니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반응이 터지고, 반응으로 자리가 비면 또 미끄러지고, 그 미끄러짐이 다시 반응을 만듭니다. 이 게임의 연쇄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짜 맞추는 것이 아니라 판을 기울여 굴러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해골로 하는 싸움

대전 규칙에도 이 게임만의 장치가 있습니다. 블록을 지울 때마다 금색 해골이 생기고, 이 금색 해골을 써서 상대 필드 천장에서 은색 해골을 떨어뜨립니다. 은색 해골은 그 자체로는 지울 수 없고, 옆에 붙은 블록이 사라질 때 같이 딸려 나가야만 없어집니다. 방해물의 고전적인 형태지만, 미끄러지는 필드와 만나면 성질이 달라집니다.

은색 해골 역시 기울기를 따라 미끄러지기 때문에, 상대가 기울기를 잘 쓰면 해골이 한쪽 구석으로 몰립니다. 몰린 해골 무더기는 처리하기 까다롭지만 나머지 공간은 깨끗해집니다. 반대로 해골이 필드 전체에 고르게 흩어지면 어디를 지워도 조금씩만 딸려 나가서 훨씬 성가십니다. 공격하는 쪽도 받는 쪽도 기울기를 계산에 넣어야 하는 구조입니다.

금색 해골을 아껴 두었다가 한꺼번에 쏟아붓는 것과, 조금씩 자주 보내 상대를 계속 성가시게 하는 것 중 무엇이 나은지는 상대에 따라 다릅니다. 연쇄를 길게 만드는 상대에게는 준비 시간을 주지 않도록 자주 보내는 편이 낫고, 안전하게 조금씩 지우는 상대에게는 한 번에 크게 밀어붙이는 편이 효과적입니다.

혼자 하는 이야기 모드

혼자 할 때는 이야기가 붙습니다. 니나라는 여성이 드라큘라 백작에게 납치된 언니를 구하러 나서고, 백작의 부하들을 차례로 꺾은 뒤 마지막에 백작 본인과 붙는 구성입니다. 상대가 바뀔 때마다 대전 상대의 성격도 달라져서, 뒤로 갈수록 낙하 속도와 상대의 처리 능력이 올라갑니다. 대전 퍼즐의 1인용 모드가 대개 그렇듯 후반부에서 난이도가 확 튀는데, 이 게임도 예외는 아닙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엔들리스 모드도 따로 있습니다. 이야기 진행에 관심이 없고 순수하게 기울기를 다루는 감각만 연습하고 싶다면 이쪽이 편합니다. 몇 판 돌리면서 기울기를 뒤집었을 때 필드가 어떻게 재배열되는지 눈에 익히면, 대전에서 훨씬 계산이 빨라집니다.

비스코라는 이름과 1997년의 사정

비스코는 1980년대 초에 세워져 아케이드와 가정용을 오가며 꾸준히 작품을 내놓던 일본 업체입니다. 대형 프랜차이즈를 키우지는 못했지만 액션과 퍼즐 쪽에서 여러 편을 냈고, 한때는 대형 업체의 우산 아래에서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목록을 훑다 보면 심심찮게 마주치게 되는, 그 시절 중견 업체의 전형적인 궤적입니다. 몬스터 슬라이더는 실제 개발을 다른 스튜디오가 맡고 비스코가 내놓은 형태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시기 일본 아케이드 업계에서는 흔한 협업 방식이었습니다.

기판은 여러 회사가 함께 쓰던 공용 하드웨어 계열을 사용했습니다. 자체 기판을 새로 설계하는 부담을 덜고 이미 검증된 보드에 롬만 얹는 방식은, 개발비를 감당해야 하는 중견 업체에게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덕분에 소리와 그림 모두 1997년 기준으로 무난한 수준을 갖췄고, 퍼즐 게임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요란하지 않습니다.

1997년 무렵의 오락실은 이미 대전 격투와 대형 체감 기계 쪽으로 무게가 쏠려 있었습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아서, 퍼즐 게임이 새로 들어와 눈에 띄기가 쉽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이 게임을 그때 실제로 만나 본 사람이 많지 않은 데에는 그런 사정이 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그 시절에 묻힌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울기 하나를 더했을 뿐인데 익숙한 낙하 퍼즐이 전혀 다른 게임이 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대신,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연쇄가 터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