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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 래버린스

소닉 래버린스 (Sonic Labyrinth) · 1995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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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의 상징은 속도인데, 이 게임의 소닉은 뛰지 못합니다. 정확히는 뛰어오를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적을 밟거나 높은 곳에 오를 수 없습니다. 발에 족쇄가 채워져 느려졌다는 설정을 붙여 놓고, 시리즈에서 가장 당연했던 것을 빼 버린 채 시작합니다. 소닉 게임을 여럿 해 본 사람일수록 처음 몇 분이 당황스럽습니다.

소닉 래버린스(Sonic Labyrinth)는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시점의 미로를 돌아다니며 열쇠를 모아 출구를 여는 게임입니다. 옆으로 달리며 진행하던 기존 소닉 시리즈와 달리 평면 위를 사방으로 움직이고, 속도로 밀어붙이는 대신 길을 찾아내는 것이 중심입니다. 휴대용 기기로 나온 소닉 가운데 가장 이질적인 작품입니다.

소닉 래버린스 플랫폼 게임 화면 1 - 게임기어 (1995)

스핀 대시가 전부인 게임

뛰지 못하는 대신 주어진 것이 스핀 대시입니다. 제자리에서 몸을 말아 회전시킨 뒤 튕겨 나가는 그 동작인데, 이 게임에서는 이것이 이동 수단이자 공격 수단이자 사실상 유일한 기술입니다. 적을 없애는 것도, 빠르게 이동하는 것도, 특정 장치를 건드리는 것도 전부 이 하나로 해결합니다.

그래서 조작 감각이 독특합니다. 평소에는 답답할 만큼 느리게 걷다가, 스핀 대시를 쓰면 갑자기 튀어 나가 벽에 부딪힐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이 두 속도 사이를 오가며 좁은 통로와 낭떠러지 사이를 지나야 합니다. 튕겨 나가는 방향과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면 계속 엉뚱한 곳으로 날아갑니다.

익숙해지면 이 시스템 나름의 재미가 나옵니다. 회전을 얼마나 모았다 풀지, 어느 각도로 쏠지를 계산해 한 번에 원하는 자리까지 가는 것이 이 게임의 손맛입니다.

미로와 열쇠

각 스테이지의 목표는 흩어져 있는 열쇠 세 개를 모아 출구로 가는 것입니다. 미로는 위아래로도 층이 나뉘어 있어서, 비스듬한 시점 탓에 어디가 발판이고 어디가 빈 공간인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잘못 판단하면 아래로 떨어져 왔던 길을 다시 올라와야 합니다.

시간 제한이 걸려 있어서 마냥 헤맬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제한은 길을 아는 사람에게는 넉넉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빠듯한 편이라, 결국 미로 구조를 외우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처음 도는 판은 답사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부터 시간을 줄여 나가는 방식이 편합니다.

각 구역의 마지막에는 보스전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쓸 수 있는 것은 스핀 대시뿐이라,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빈틈에 정확히 한 번 꽂아 넣는 싸움이 됩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나

시점을 비스듬히 눕히고 미로를 넣은 소닉은 이 무렵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던 시도 중 하나입니다. 이 시기 세가는 간판 캐릭터를 옆으로 달리는 액션 바깥으로 데려가 보려는 실험을 여럿 했고, 이 작품도 그 흐름에 있습니다.

문제는 소닉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속도에 크게 기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속도를 설정으로 빼앗고 나니, 남는 것은 이 캐릭터가 아니어도 성립하는 미로 게임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평가가 대체로 박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게임 자체가 못 만들어졌다기보다, 소닉에게 기대하는 것과 게임이 주는 것이 어긋났습니다.

지금 해 보면

기대를 내려놓고 잡으면 인상이 달라집니다. 열쇠를 찾아 미로를 도는 구조는 명확하고, 스핀 대시 하나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규칙은 단순하면서도 손에 익힐 여지가 있습니다. 한 판이 짧아서 이동 중에 짬을 내 하기에도 맞습니다.

다만 시리즈의 다른 작품을 기대하고 온 사람에게는 끝까지 낯설게 남습니다. 소닉 게임 목록에서 이 작품이 유독 언급이 적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한국에서도 휴대용 기기 자체의 보급이 넓지 않아 이 게임을 직접 해 본 사람은 드물었고, 소닉이라는 이름은 알아도 이런 게임이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리즈가 여러 방향을 시험하던 시기에 가장 멀리까지 나가 본 작품으로, 실패한 실험이라 해도 무엇을 빼면 그 캐릭터가 그 캐릭터가 아니게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 준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