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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 실리 스포츠 스펙타큘러

스누피 실리 스포츠 스펙타큘러 (Snoopy S Silly Sports Spectacular USA) · 1990 · Ke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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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가 나오는 스포츠 게임인데, 정작 원래 뿌리는 스누피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게임은 영국에서 만든 컴퓨터 게임을 가져와 캐릭터만 갈아 끼운 물건입니다. 일본에서는 도널드 덕이 표지에 실렸고, 북미에서는 스누피와 피너츠 친구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같은 게임이 지역마다 전혀 다른 얼굴로 나온 셈인데, 종목들이 하나같이 엉뚱한 탓에 어느 캐릭터를 붙여 놓아도 어울린다는 점이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스누피 실리 스포츠 스펙타큘러(Snoopy's Silly Sports Spectacular)는 여러 개의 짤막한 종목을 이어서 겨루는 스포츠 모음집입니다. 정통 육상 종목을 흉내 내는 대신,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비튼 경기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혼자 기록에 도전할 수도 있고, 둘이 번갈아 하거나 맞붙어 승부를 낼 수도 있습니다.

스누피 실리 스포츠 스펙타큘러 기타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90)

버튼을 두들기는 게임

이런 종류의 스포츠 모음집이 대부분 그렇듯, 조작의 뼈대는 버튼 연타입니다. 빠르게 누를수록 게이지가 차고, 게이지가 곧 속도이거나 힘입니다. 여기에 정해진 순간에 버튼을 놓거나 방향을 맞추는 조작이 얹히면서 종목마다 성격이 갈립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해 보면 요령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빨리 누르기만 해서는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는 종목이 있습니다. 각도를 정하는 순간에 손가락을 멈춰야 하는데, 연타에 정신이 팔려 그 타이밍을 놓치면 힘은 잔뜩 모아 놓고 엉뚱한 방향으로 날려 버립니다. 힘 모으기와 타이밍 잡기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첫 번째 요령입니다.

두 번째 요령은 연타 자체를 손에 익히는 것입니다. 한 손가락으로 계속 누르는 것보다 두 손가락을 번갈아 쓰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이런 사소한 방법 차이가 기록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기 때문에, 같은 게임을 해도 사람마다 결과가 크게 벌어집니다.

스누피 실리 스포츠 스펙타큘러 기타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90)

종목이 왜 우스꽝스러운가

이 게임의 종목들은 실제 육상 경기를 그대로 옮겨 놓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달리기나 던지기 대신, 규칙을 한 번씩 비틀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종목이 나오면 뭘 해야 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하고, 그 파악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의 일부입니다.

이런 구성은 원작이 영국 컴퓨터 게임이었다는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유럽 쪽에서는 진지한 스포츠 게임 옆에 일부러 괴상한 종목만 모은 게임들이 여럿 나왔습니다. 정통 종목을 잘 만드는 경쟁에 뛰어드는 대신, 아예 웃기려고 작정한 종목으로 승부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기록 경신을 파고드는 종류라기보다,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앉아 웃으며 하는 종류에 가깝습니다. 혼자 오래 붙잡고 있으면 금방 밑천이 드러나지만, 옆에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둘이 할 때 살아나는 게임

이런 모음집의 진짜 용도는 둘이 붙는 것입니다. 종목 하나가 짧게 끝나기 때문에 지고 나면 곧바로 다음 판이 오고, 그 짧은 회전이 계속 다시 하게 만듭니다. 혼자 기록을 재는 것보다 옆 사람보다 조금 앞서는 쪽이 훨씬 즉각적인 만족을 줍니다.

승부가 갈리는 지점도 명확합니다. 연타 속도로 밀리면 힘 위주 종목에서 계속 지고, 타이밍이 나쁘면 각도 잡는 종목에서 무너집니다. 서로 강한 종목이 다르면 종목마다 엎치락뒤치락하게 되어 마지막까지 결과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실력 차가 크면 재미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연타 요령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붙으면 대부분의 종목이 일방적으로 끝납니다. 처음 하는 상대에게는 연타를 두 손가락으로 하는 법 정도는 알려 주고 시작하는 편이 서로에게 낫습니다.

캐릭터를 갈아 끼운 게임

이 게임이 특이한 점은 지역마다 등장인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게임의 구조와 종목은 그대로인데 화면에 나오는 캐릭터만 바뀌었습니다. 유명 캐릭터의 이름값에 기대어 판매를 노린 방식인데, 당시에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게임 안에서 캐릭터가 하는 역할은 크지 않습니다. 능력치가 다르거나 고유한 이야기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화면을 채우는 얼굴로 기능합니다. 피너츠를 좋아해서 이 게임을 집어 들었다면 원작 만화의 정서를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반대로 캐릭터에 관심이 없다면 그냥 짧은 종목 모음집으로 즐기면 됩니다.

당시 이런 형태의 게임이 많이 나온 데에는 사정이 있습니다. 한 종목을 깊게 만드는 것보다 짧은 종목 여럿을 붙이는 편이 개발 부담이 적었고, 여기에 알려진 캐릭터를 얹으면 눈에 띄기 쉬웠습니다. 이 게임은 그런 시절의 전형에 해당합니다.

국내에서 어떻게 만났나

한국에서 이 게임은 널리 알려진 축은 아닙니다. 다만 스포츠 모음집이라는 형식 자체는 매우 익숙했습니다. 버튼을 미친 듯이 두들겨 달리기 기록을 재는 게임들은 오락실과 가정용 기기 양쪽에서 계속 나왔고, 여럿이 모이면 늘 그런 게임부터 켰습니다.

스누피라는 캐릭터도 국내에서 오래 익숙했던 편입니다. 만화 자체보다 문구류나 인쇄물을 통해 얼굴이 먼저 알려진 쪽에 가까웠는데, 그 덕에 화면에 스누피가 나오면 아이들이 쉽게 손을 뻗었습니다.

지금 켜 보면 분량이 짧고 구성이 소박하다는 것이 금방 보입니다. 하지만 규칙을 설명할 필요가 없고 한 종목이 금방 끝나는 게임은 여전히 쓸모가 있습니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켜서 옆 사람과 몇 판 붙어 보기에 알맞은 종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