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 파이터 메가드라이브판
클레이 파이터 (Clay Fighter USA) · 1994 · Inter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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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게임이 넘쳐나던 시절, 진지한 무술가 대신 눈사람과 광대와 엘비스 흉내를 내는 캐릭터를 링에 올린 게임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림이 아니라 진짜 점토로 만든 인형을 촬영해서 화면에 옮겨 놓았습니다. 캐릭터가 맞을 때마다 몸이 뭉개지고 늘어나는데, 이 물컹한 움직임이 다른 어떤 격투 게임에서도 볼 수 없는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
클레이 파이터(ClayFighter)는 인터플레이가 낸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기본 규칙은 당시 격투 게임의 문법을 그대로 따릅니다. 캐릭터를 고르고, 라운드제로 붙고, 방향키와 버튼 조합으로 필살기를 씁니다. 다른 점은 그 안에 담긴 것이 전부 농담이라는 사실입니다.
점토로 만든 화면
캐릭터를 점토 모형으로 만들어 한 프레임씩 찍은 뒤 디지털로 옮기는 방식으로 그래픽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캐릭터 표면에 지문 자국 같은 질감이 그대로 남아 있고, 움직임에도 손으로 만든 특유의 어색한 맛이 있습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타격감입니다. 맞은 부위가 실제로 눌리고 튕기는 것처럼 보여서, 공격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확실합니다. 단점은 프레임 수입니다. 한 컷씩 찍어야 하니 동작 사이가 촘촘하지 않아서, 정교한 격투 게임을 기대하면 답답합니다.
메가드라이브판은 색 수가 적은 기기 특성상 슈퍼패미컴판보다 화면이 다소 거칠고 소리도 다릅니다. 반면 속도감은 나쁘지 않아서, 대전 자체는 무난하게 굴러갑니다.
캐릭터들
등장인물은 전부 무언가를 비튼 존재입니다. 눈사람, 광대, 늑대인간, 록스타를 흉내 낸 캐릭터, 진흙 덩어리 같은 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각자 필살기가 있고, 그 필살기도 대개 웃기려고 만든 것입니다.
캐릭터마다 체격 차이가 커서 실전에서는 사거리와 판정 차이로 나타납니다. 몸집이 큰 캐릭터는 맞는 판정도 크지만 한 방이 무겁고, 작은 캐릭터는 파고들기 쉽습니다. 이 차이를 알고 나면 아무나 골라도 되는 게임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대 배경도 캐릭터에 맞춰 우스꽝스럽게 꾸며져 있습니다. 서커스 천막, 눈 덮인 벌판, 늪지 같은 곳에서 싸우는데, 배경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움직임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해 보면
조작은 익히기 쉽습니다. 커맨드가 복잡하지 않고, 필살기가 나가는 조건도 관대한 편입니다. 격투 게임을 잘 못하는 사람도 몇 판 만에 기술을 쓸 수 있습니다.
문제는 깊이입니다. 견제와 반격의 수 싸움이 얕아서,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이 붙으면 결국 비슷한 기술을 반복하는 양상이 됩니다. 진지하게 파고들 게임이라기보다는 웃으면서 몇 판 하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혼자 하는 모드에서는 후반 상대의 반응 속도가 올라가 답답해집니다. 이럴 때는 사거리가 긴 평타로 거리를 유지하다가 상대가 뛰어들 때만 받아치는 식이 안정적입니다. 무리하게 필살기를 지르면 빈틈을 그대로 얻어맞습니다.
이 게임이 놓인 자리
이 작품은 원래 슈퍼패미컴으로 먼저 나왔고, 이듬해 메가드라이브로 옮겨졌습니다. 당시 격투 게임 시장은 진지한 무술 대결과 잔혹한 연출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클레이 파이터는 그 사이로 코미디라는 자리를 파고들었습니다.
전략 자체는 통했습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해 후속작이 여럿 나왔고, 그중 일부는 국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다만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농담의 강도는 세지고 대전 게임으로서의 뼈대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평이 따라붙습니다.
한국에서
국내에서는 이름보다 화면으로 기억되는 게임입니다. 점토 캐릭터가 맞아서 뭉개지는 그림이 워낙 독특해서, 게임 잡지 화면 사진만 보고도 무슨 게임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통 격투 게임을 찾던 사람들에게는 가벼운 게임으로 취급받았지만, 친구와 둘이 앉아 웃으면서 하기에는 오히려 이쪽이 나았습니다. 진지한 대전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권하기 좋은, 성격이 분명한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