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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퍼

태퍼 (Tapper Budweiser 1 27 84) · 1983 · Bally Mid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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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네 줄을 혼자 지키는 바텐더

오락실 게임의 주인공이라면 보통 우주선을 몰거나 주먹을 쓰기 마련인데, 이 게임의 주인공은 앞치마를 두른 바텐더입니다. 무기는 잔 하나, 전장은 기다란 나무 카운터 네 줄입니다. 손님들은 카운터 저 끝에서 들어와 바텐더 쪽으로 한 칸씩 밀고 들어오고, 바텐더는 그들이 자기 앞까지 오기 전에 잔을 밀어 보내 되돌려 보내야 합니다.

말로 옮기면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지만, 실제로 잡아 보면 이게 꽤 잔인한 게임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네 줄이 동시에 차오르기 시작하면 몸은 하나뿐인데 가야 할 곳은 네 군데입니다. 위아래로 줄을 옮겨 다니는 그 짧은 이동 시간이 이 게임의 진짜 난이도입니다.

태퍼 플랫폼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3)

어떤 게임인가

태퍼(Tapper)는 1983년 밸리 미드웨이가 내놓은 액션 게임입니다. 화면에는 위에서 아래로 네 개의 긴 카운터가 놓여 있고, 플레이어는 그 왼쪽 끝을 오르내리는 바텐더를 조종합니다. 레버로 줄을 고르고 버튼을 누르면 잔이 카운터를 미끄러져 오른쪽으로 날아갑니다.

잔이 손님에게 닿으면 손님은 그 자리에서 잔을 받아 마시며 뒤로 조금씩 밀려납니다. 손님이 화면 오른쪽 끝까지 밀려나면 그 손님은 처리된 것입니다. 반대로 잔을 제때 보내지 못해 손님이 왼쪽 끝까지 걸어 들어오면, 바텐더는 그 손님에게 붙들려 카운터 너머로 던져지고 목숨을 하나 잃습니다.

태퍼 플랫폼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3)

잔은 한 번 쓰고 끝이 아닙니다

이 게임을 처음 하면 대개 잔만 열심히 쏘다가 죽습니다. 손님이 술을 다 마시면 빈 잔을 바텐더 쪽으로 도로 밀어 보내는데, 이 빈 잔이 카운터 왼쪽 끝까지 굴러와 떨어지면 그것도 실수로 처리됩니다. 그러니까 잔을 보내는 일과 잔을 받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손님을 밀어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으면 반대편에서 빈 잔이 소리 없이 굴러오고, 빈 잔을 줍느라 자리를 비우면 다른 줄의 손님이 카운터 끝까지 닿습니다. 이 두 가지 압박이 서로 엇갈리며 들어오는 구조가 태퍼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의 플레이를 보면 잔을 쏘는 동작보다 줄을 옮겨 다니는 동선이 훨씬 인상적입니다.

태퍼 플랫폼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83)

팁을 놓고 가는 손님

손님 가운데 일부는 잔을 비우고 돌아가면서 카운터 위에 팁을 놓고 갑니다. 이 팁을 주우면 점수가 오르고, 그와 함께 무대 한쪽에서 공연이 벌어지며 손님들의 주의가 잠시 그쪽으로 쏠립니다. 밀려 들어오던 줄이 순간 멈추는 셈이라, 상황이 급할 때 팁을 언제 줍느냐가 한 판을 살리기도 합니다.

다만 팁을 주우러 가는 동안에도 다른 줄은 계속 움직입니다. 욕심을 내면 점수는 벌지만 목숨을 잃습니다. 점수를 노릴지 안전하게 넘길지 매 순간 저울질하게 만드는 이 선택이, 단순해 보이는 조작에 비해 이 게임이 오래 붙잡히는 이유입니다.

광고에서 출발한 게임

태퍼는 원래 술집에 놓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기판에는 맥주 브랜드의 로고가 그대로 붙어 있었고, 아예 캐비닛에 잔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것도 있었습니다. 이후 술과 무관한 곳에도 놓을 수 있도록 배경과 음료를 바꾼 판본이 따로 나왔습니다. 같은 게임인데 간판만 갈아 끼운 셈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널리 퍼진 축에 들지 못했습니다. 배경이 술집이라는 점, 그리고 총이나 주먹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당시 국내 오락실의 인기 노선과 맞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특유의 손맛을 이야기합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잔이 나무 위를 스르륵 미끄러지는 감각이, 나온 지 한참 지난 지금 해 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처음 잡는다면

무조건 한 줄씩 확실하게 정리하는 게 낫습니다. 네 줄을 고르게 살피려다 보면 어느 줄도 끝내지 못한 채 전부 차오릅니다. 가장 위험한 줄부터 잔을 두세 개 연달아 보내 확실히 밀어낸 다음 다음 줄로 옮기는 편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그리고 빈 잔을 세는 습관을 들이면 좋습니다. 내가 몇 잔을 보냈는지 기억하고 있으면 언제쯤 빈 잔이 돌아올지 어림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쫓기 어려운 뒷줄일수록 이 계산이 목숨을 지켜 줍니다. 익숙해지고 나면 손님을 밀어내는 일보다 카운터를 깨끗하게 비워 두는 일이 더 재미있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