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즈
게임즈 (Games v25 4x) · 1992 · U.S. Games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오락실 게임이라고 하면 대개 레버와 버튼이 달린 커다란 통을 떠올리지만, 미국에는 그것과 전혀 다른 계보가 있었습니다. 술집이나 식당 카운터 위에 올려놓는 작은 상자 형태의 기계입니다. 앉아서 한 손으로 술잔을 들고 다른 손으로 버튼을 누르며 즐기는 것이 전제라, 레버도 없고 화면도 작습니다. 이 기판은 그 계보에 속합니다.
Games V25.4X는 여러 종류의 퀴즈와 간단한 놀이를 한 기계에 담아 둔 모음집 형태의 기판입니다. 조작에는 레버가 없고 버튼 일곱 개만 있습니다. 화면에 문제가 뜨면 보기 옆에 붙은 버튼을 눌러 답하는 방식이고, 버튼 안에 불이 들어와 지금 어느 것을 누를 수 있는지를 알려 줍니다. 최대 네 사람까지 차례를 번갈아 가며 즐길 수 있습니다.
술집 카운터의 기계라는 것
이런 형태의 기계는 오락실 기계와 목적이 다릅니다. 오락실 기계가 실력을 겨루고 한 판을 깊이 파고들게 만든다면, 카운터 위의 기계는 대화 사이사이에 가볍게 손이 가는 것을 노립니다. 그래서 한 문제가 짧고, 실패해도 좌절감이 없고, 여럿이 둘러앉아 서로 답을 말하며 즐기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버튼만으로 조작한다는 점도 이 목적에서 나옵니다. 레버가 있으면 정면에 자리를 잡고 두 손을 써야 하지만, 버튼만 있으면 옆에 앉아서도 한 손으로 누를 수 있습니다. 기계 위에 잔을 올려 두고도 방해가 되지 않아야 했습니다.
또 하나 이런 기계의 특징은 기록을 남긴다는 점입니다. 이 기판에는 전원을 꺼도 내용이 지워지지 않는 기억 장치가 들어 있어서, 점수와 설정이 그대로 남습니다. 단골이 다음에 와서 자기 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장치였습니다.
상식 문제를 푸는 재미
퀴즈 게임의 재미는 단순합니다. 아는 문제가 나오면 기분이 좋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옆 사람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이 기판의 문제는 영어권 상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지금 한국에서 열어 보면 답을 아는 문제와 전혀 모르는 문제가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전략이랄 것이 거의 없는 장르이지만 요령은 있습니다. 대부분의 퀴즈 기계는 제한 시간을 두고, 빨리 답할수록 점수를 더 줍니다. 그래서 확신이 있는 문제는 망설이지 말고 바로 누르고, 모르는 문제는 남은 시간을 다 쓰면서 보기를 하나씩 지워 나가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점수가 올라갑니다.
여럿이 할 때는 성격이 또 달라집니다. 차례를 번갈아 가며 진행하므로, 상대가 어떤 분야에 약한지가 몇 판이면 드러납니다. 이 기계가 술집에 놓였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 계보의 한 판본
이 기판은 하나의 독립된 게임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이어진 제품군의 한 판본입니다. 제목에 붙은 숫자가 곧 판본 번호이고, 그 앞뒤로 번호만 다른 형제들이 여럿 있습니다. 같은 회사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문제와 구성을 조금씩 바꿔 가며 계속 새 판본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카운터 기계 시장의 특성에서 나왔습니다. 가게에 한 번 들어간 기계는 오래 그 자리에 남고, 손님들이 문제를 다 외우면 손이 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기계 전체를 바꾸는 대신 안에 든 기억 장치만 갈아 끼워 새 문제를 넣는 방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번호가 계속 올라가는 제목은 그 흔적입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물건
한국 오락실에는 이런 형태의 기계가 사실상 없었습니다. 술집 카운터 위에 게임기를 두는 문화가 없었고, 무엇보다 문제가 전부 영어인 퀴즈 기계는 들어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판은 한국의 오락실 기억과는 겹치지 않습니다. 대신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게임기가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레버 없이 버튼 일곱 개로만 이루어진 화면을 마주하면, 우리가 아는 오락실 게임이 여러 갈래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