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인드 스토머
그라인드 스토머 (Grind Stormer) · 1992 · Toaplan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토아플랜이라는 이름은 슈팅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계보 그 자체입니다. 타이거 헬리에서 시작해 구극 타이거, 대마계촌 계열의 하청 작업, 그리고 뱃츠건과 도돈파치로 이어지는 탄막 슈팅의 씨앗까지, 90년대 슈팅의 문법 상당 부분이 이 회사 손에서 나왔습니다. 그라인드 스토머는 그 회사가 문을 닫기 몇 해 전에 낸 세로 스크롤 슈팅이고, 일본에서는 브이 파이브라는 이름으로 나온 같은 게임입니다.
그라인드 스토머(Grind Stormer)는 화면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동안 자기 기체를 조작해 적을 쏘아 떨어뜨리는 세로 스크롤 슈팅 게임입니다. 조작은 레버와 버튼 두 개, 하나는 일반 사격이고 하나는 화면 전체를 정리하는 폭탄입니다. 적을 부수면 나오는 아이템을 먹어 무기를 바꾸고 화력을 키우며, 구간이 끝날 때마다 큰 보스가 나와 길을 막습니다. 슈팅 장르의 교과서적인 뼈대를 그대로 갖춘 게임입니다.
무기를 고르는 재미
이 게임에서 가장 성격이 뚜렷하게 갈리는 부분은 무기 계통입니다. 적을 부수면 떨어지는 아이템에 따라 사격 방식이 바뀌는데, 앞으로 곧게 뻗어 관통력이 강한 계통과 옆으로 넓게 퍼져 화면을 훑는 계통이 있습니다. 같은 아이템을 계속 먹으면 그 계통이 단계별로 강해지고, 다른 계통을 먹으면 처음 단계로 바뀝니다.
이 구조 때문에 실수 하나가 크게 아픕니다. 화력을 잔뜩 키워 둔 상태에서 무심코 다른 계통 아이템을 밟으면 순식간에 약해지고, 그 직후 몰려오는 적을 못 밀어내면서 연쇄적으로 무너집니다. 그래서 익숙해질수록 아이템을 먹는 것보다 피하는 판단이 늘어납니다. 안 먹고 지나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계통마다 어울리는 구간이 다른 것도 재미입니다. 곧게 뻗는 무기는 보스처럼 한 덩어리를 빨리 녹여야 할 때 강하고, 넓게 퍼지는 무기는 잔챙이가 사방에서 몰려오는 구간을 정리할 때 편합니다. 어느 쪽을 주력으로 삼을지 정하고 그에 맞게 자리를 잡는 것이 이 게임의 기본 전략입니다.
어디서 어렵고, 어떻게 넘기나
슈팅 게임에서 죽는 이유는 대개 셋 중 하나입니다. 화면 위쪽으로 너무 올라가서 총알을 피할 공간이 없어지거나, 화면 가장자리에 몰려 도망갈 길이 막히거나, 총알이 아니라 적 기체 자체에 부딪히는 경우입니다. 이 게임도 마찬가지고, 특히 두 번째가 무섭습니다. 옆으로 피하다 보면 어느새 벽에 붙어 있고, 그 상태에서 총알 한 줄이 오면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본 자세는 화면 아래쪽 가운데 근처를 지키는 것입니다. 아래쪽에 있으면 총알이 날아오는 시간이 길어져 반응할 여유가 생기고, 가운데에 있으면 좌우 어느 쪽으로든 도망칠 수 있습니다. 화력이 아까워서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은데, 그 욕심이 이 장르에서 가장 흔한 사망 원인입니다.
폭탄은 아끼면 손해입니다. 초보가 가장 자주 하는 실수가 나중에 쓰려고 모아 두다 폭탄을 든 채로 죽는 것입니다. 위험하다고 느낀 순간이 이미 늦은 때고, 그때 바로 눌러야 삽니다. 특히 보스가 마지막 발악으로 총알을 뿌리는 구간은 정직하게 피하려 하기보다 폭탄으로 넘기는 편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토아플랜 슈팅 안에서의 자리
토아플랜의 슈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총알이 굵고 느리게 날아오는 대신 배치가 촘촘한 초기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총알이 잘고 많아지면서 피하는 길을 찾는 재미가 커지는 후기 계열입니다. 그라인드 스토머는 회사 말기 작품답게 후기 쪽 감각에 가깝습니다. 화면에 깔리는 총알의 양이 앞선 작품들보다 늘었고, 그것을 폭탄과 자리 잡기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이 흐름이 이어져 이후의 탄막 슈팅으로 넘어갑니다. 토아플랜이 해산한 뒤 그 인원들이 케이브와 라이징 같은 회사로 흩어지면서 90년대 후반 탄막 슈팅의 뼈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시기 토아플랜 작품들은 그 다음 시대를 미리 보여주는 자료로도 읽힙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한국에서 세로 스크롤 슈팅은 오랫동안 오락실의 기본 반찬 같은 존재였습니다. 대전 격투가 자리를 대부분 차지하기 전까지는 어느 오락실에 가도 종스크롤 기판 한두 대는 있었고, 실력이 좋은 사람이 붙으면 한 판으로 오래 버티는 모습이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다만 이 게임처럼 회사 말기에 나온 작품들은 국내 유입이 고르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 대전 격투 열풍에 밀려 들어오는 물량 자체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름은 낯설어도 막상 잡아 보면 그 시절 종스크롤의 감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반가운 부류에 속합니다. 슈팅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손이 먼저 기억할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