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스고로쿠 대회
미나상노 오카게사마데스 대스고로쿠 대회 (Minasanno Okagesamadesu Daisugorokutaikai Mom 001 Moh 001) · 1990 · Monol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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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에 놓인 말판 게임
오락실 기계라고 하면 쏘고 때리고 피하는 것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 물건은 주사위를 굴려 말을 옮기는 말판 게임입니다. 반사신경도 손놀림도 필요 없고, 대신 운이 절반쯤을 차지합니다. 액션 게임 사이에 이런 기계가 한 대 끼어 있는 광경은 지금 보면 조금 낯설지만, 그 시절 일본 오락실에는 이런 조용한 물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제목 앞부분은 당시 일본 방송 프로그램에서 따온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인기 있던 것을 오락실 기계로 옮기는 일은 흔했습니다. 게임을 잘 모르는 손님도 화면에 익숙한 이름이 떠 있으면 한 번쯤 앉아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대스고로쿠 대회(Dai Sugoroku Taikai)는 스고로쿠, 즉 일본식 말판 게임입니다. 우리가 아는 윷놀이나 부루마블처럼 출발점에서 시작해 주사위 눈만큼 말을 옮기고, 먼저 도착점에 닿는 쪽이 이깁니다. 규칙의 뼈대는 그것뿐이라 설명이 거의 필요 없습니다.
재미는 칸에 있습니다. 말이 멈춘 칸마다 무슨 일이 일어납니다. 앞으로 크게 나아가거나, 뒤로 밀리거나, 한 차례 쉬거나 하는 식입니다. 잘 가다가 한 칸 때문에 순위가 뒤집히는 순간이 이 장르의 묘미이고, 이 게임도 그 지점을 노립니다.
중간중간 짧은 미니게임이 끼어드는 구성도 이런 말판 게임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입니다. 주사위만 굴리면 지루하니, 손을 쓰는 순간을 섞어 넣어 흐름에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알아 둘 것
조작할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을 먼저 받아들이면 편합니다. 주사위를 굴리는 버튼을 누르고, 가끔 갈림길에서 방향을 고르고, 미니게임이 나오면 그때만 손을 씁니다. 액션 게임처럼 계속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답답해집니다.
일본어 화면이라는 점도 미리 알아 두면 좋습니다. 칸에 적힌 글이나 안내문을 다 읽지 못해도 게임은 굴러갑니다. 말이 앞으로 갔는지 뒤로 갔는지는 화면만 봐도 보이고, 갈림길에서는 아무 쪽이나 골라도 진행됩니다. 몇 판 하다 보면 어느 칸이 좋은 칸이고 어느 칸이 함정인지 그림만으로 구별이 됩니다.
실력으로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적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주사위가 잘 나오면 이기고 안 나오면 집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이기려고 붙잡는 물건이 아니라, 판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구경하는 물건에 가깝습니다.
그 시절 오락실의 이런 자리
1990년 무렵 일본 오락실은 대형 액션과 대전 격투가 자리를 넓혀 가던 때입니다. 그 틈에서 말판 게임이나 퀴즈, 마작 같은 조용한 장르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계는 손이 빠른 젊은 손님보다, 잠깐 앉아 시간을 보내려는 손님을 상대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을 소재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게임을 찾아온 사람이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을 앉히려는 기획이고, 그러려면 낯익은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물건들은 대체로 일본 안에서만 돌았고 해외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소재가 그 나라 시청자에게만 통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해 보면
국내 오락실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종류입니다. 화면 가득 일본어가 나오는 데다 반사신경으로 즐기는 게임도 아니라, 국내 업소에 들여놓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기억하는 국내 사용자는 드뭅니다.
지금 켜 보는 재미는 게임 자체보다 그 시절 일본 오락실의 폭을 보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오락실 게임이 슈팅과 격투뿐이 아니었다는 것, 텔레비전과 오락실이 이런 식으로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화면 하나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여럿이 둘러앉아 주사위 굴러가는 것을 구경하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차피 실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으니, 게임을 잘 못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에는 오히려 이런 쪽이 편합니다.